"타인의 상처 앞에 겸손해야… 정치도 법도 남의 아픔 대변 못해"

    입력 : 2017.06.14 00:45

    [문학평론가 왕은철 교수 인터뷰]
    상처 소재로 한 외국문학 연구, 최근 '트라우마와 문학… ' 펴내

    왕은철 교수
    마음의 상처는 때로 대(代)를 잇는다. 그리고 개인과 사회 전체를 뒤흔드는 지진으로 돌변한다. 문학평론가인 왕은철(61·사진) 전북대 영문과 교수는 "문학은 인간이 받은 충격에 주목하는 상처의 기록"이라며 "타인의 상처를 통해 상처를 살피고 치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유명 외국 소설로 바라본 상처와 트라우마의 글을 묶어 최근 '트라우마와 문학, 그 침묵의 소리들'(현대문학)이라는 책으로 묶어 냈다. 그에게도 상처가 있다.

    ―왜 쓰게 됐나.

    "2013년 아버지가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뼈만 남은 앙상한 아버지를 보면서 상처가 컸다. 성당을 다니며 마음을 추슬렀다. 이듬해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선장이 침몰 위기 배를 버리고 도망치는 미국 소설가 콘래드의 '로드 짐' 중 한 장면이 떠올랐다. 문학으로 상처를 들여다보기로 결심했다."

    왕 교수는 2012년에도 문학에 나타난 죽음과 애도를 다룬 책 '애도예찬'을 낸 적이 있다.

    ―죽음과 상처에 집착하는 이유가 뭔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상처가 된다는 점에서 죽음과 상처는 한 묶음이다. 둘 다 삶에서 늘 만나는 것이다. 그러니 피하지 말고 사귀어야 한다. 다만 차기작은 좀 밝은 걸로 해볼까 한다. '환대'(歡待)라는 주제로."

    책은 중세 소설 '데카메론'부터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 이르기까지 20여 편 문학 작품을 여러 각도에서 열어보이며 상처와 트라우마를 환기해낸다. 왕 교수는 특히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1964)를 일컬어 '불온한 책'이라며 도발을 서슴지 않는다. "원문엔 나무가 'She'로 표기된다. 주인공 남자는 나무 그늘에서 쉬고 열매 따먹는 것도 모자라 몸통까지 베어가더니 나중엔 밑동을 깔고앉기까지 한다. 나무의 침묵에 귀 기울여야 한다. 나무가 말이 없는 건 아프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아파서다."

    미국 아동문학가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 왕 교수는 “우리가 알지 못하고 때론 애써 눈 감아버리는 타인의 고통과 트라우마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미국 아동문학가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 왕 교수는 “우리가 알지 못하고 때론 애써 눈 감아버리는 타인의 고통과 트라우마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시공주니어
    ―타인의 아픔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도 많다.

    "상처를 공감하는 건 가능하지만, 남의 상처는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상처를 대할 때는 모두가 겸손하고, 조심해야 한다. 정치와 법을 포함한 모든 것은 자신이 그 상처를 대변할 수 있다고 교만해지는 순간 본분을 잊게 된다."

    왕 교수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 쓰는 이 세상의 모든 작가들은 유죄"라고 했다. "편집 혹은 왜곡까지 감행해 죽음을 애도함과 동시에 배반한다"는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소설가 존 쿳시는 아들을 잃고 '페테르부르크의 대가'를 썼고, 우크라이나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전쟁과 원폭 피해자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해 노벨문학상까지 받았다.

    ―그럼 당신도 유죄인가?

    "그런 셈이다."

    ―그럼에도 쓰는 이유는?

    "상처가 지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둑기사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패했을 때 인간에겐 큰 트라우마가 생겼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 존재의 의미를 돌아보게 했다. 세 판 내리 지고 한 판 이겼을 때의 환희를 알게했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지를 증명했다. 상처는 우리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받들어 모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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