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 "내 인생은 순간이라는 돌로 쌓은 성벽"

  • 뉴시스

    입력 : 2017.06.14 09:26

    성석제의 소설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재출간
    "다리가 부러지면 어떠냐, 창문이 깨지면 어떠냐. 치료비가, 창문값이, 가방값이 들면 또 어떠냐. 폭력에 당하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 훨씬 싸다. 폭력은 그것을 휘두르는 사람은 쉽게 잊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당하는 사람은 평생 두고두고 그 순간의 끔찍함에 몸서리치게 된다. 무엇보다도 폭력은 폭력을 낳기 때문에 나쁘다. 토끼면 된다. 서로에게 이익이다."(154쪽)

    성석제의 소설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이 재출간됐다. 2017년 개정판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은 1997년 출간된 '재미나는 인생'과 2003년 출간된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의 짧은소설들을 저자가 직접 고르고 다듬어 엮은 것이다.

    농촌마을에서 벌어진 유쾌한 소동('경운기 주정차 금지 위반')부터 사교육 문제('선행학습'), 나이에 따른 갑질('미안하다고 했다'), 학교 폭력('재미나는 인생 3―폭력에 관하여'), 뇌물('보이지 않는 손') 등의 사회문제는 물론이거니와, 인생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잠언 같은 소설들에 이르기까지 세계를 이루는 다양한 인간군상들, 그리고 그 인간들이 펼쳐내는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들을 포착했다. 이 책의 제목은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작품에서 연유한 것이다.

    "예전에 대통령까지 지낸 뇌물계의 거장, 위인(偉人)의 솜씨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 그는 한 번도 뇌물을 요구한 적이 없다는 것이 평생의 자랑이다. 처음 그에게 돈을 가지고 간 사람들은 그가 뇌물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몹시 갑갑해한다. (…) 그래도 세월은 흐르는 것, 언젠가는 뇌물을 건네지 않으면 안 될 마지막 순간이 온다. 그때가 되면 돈을 가지고 간 사람은 바짝 긴장하여 땀에 젖은 손으로 양복 안주머니에서 봉투 따위를 꺼내 손에 쥐게 된다. 혹은 뒤에 감춰두었던 가방 손잡이를 엉거주춤 쥐게 된다. 그때 뭔가가 번쩍, 하고 벼락 혹은 고압전류처럼 자신의 몸을 휘감고 지나간 것을 감지하면 그는 목적을 이룬 게 된다. 상대는 여전히 국사의 막중함과 민족이 나아갈 바를 이야기하고 있을 뿐,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그래도 미심쩍어하는 사람은 한번 더 그에게 가서 번쩍, 하는 그 황홀한 순간을 경험함으로써 우리나라에도 이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최고의 슈퍼스타가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고 한다"('보이지 않는 손' 중에서)

    "나는 행운아다. 이제까지 누구에게도 맞지 않았다. 나는 행운아다. 이 폭력이 난무하는 나라에서 한 대도 맞지 않고 살아왔다니. 아니, 한 번은 맞은 적이 있다. 그러니까 행운아다. 한 번밖에 맞지 않았다."(151쪽)

    저자는 "내 인생은 순간이라는 돌로 쌓은 성벽이다"며 "어느 순간은 노다지처럼 귀하고 어느 벽돌은 없는 것으로 하고 싶고 잊어버리고도 싶지만 엄연히 내 인생의 한순간이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안다. 내 성벽의 무수한 돌 중에 몇 개는 황홀하게 빛나는 것임을. 또 안다. 모든 순간이 번쩍거릴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겠다. 인생의 황홀한 어느 한순간은 인생을 여는 열쇠 구멍 같은 것이지만 인생 그 자체는 아님을." 276쪽, 1만3000원,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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