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직업은 만화가 아닌 이야기꾼 "

    입력 : 2017.06.15 00:38

    - 이탈리아 만화가 지피 인터뷰
    각종 국제만화상 쓸어담아
    종이 만화 위주 이탈리아서 1억원 가까운 선인세 작가
    伊 최고문학상 최종심 오르기도

    2014년 이탈리아는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놓고 격렬한 논쟁을 치렀다. 한 만화가 때문이었다. 최고 권위 문학상 중 하나인 '스트레가상' 최종심에 그의 작품 'UnaStoria(하나의 이야기)'가 오른 것이다. "출판사 대표가 '한번 응모나 해보자' 했던 건데 너무 놀랐죠. 만화여도 전체적 구성과 표현이 문학적 완결성을 지닌다면 문학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만화를 얕보는 편견을 부순 거죠." 이탈리아 만화가 지피(Gipi·54)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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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한 이탈리아문화원 초청으로 첫 방한한 만화가 지피. 본명은 잔 알폰소 파치노티. 14일 만난 지피는“본명이 너무 길어 짧은 필명을 찾다가 즉흥적으로 지은 이름”이라고 말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이번엔 만화 '아들의 땅'(북레시피 刊) 국내 출간을 기념해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멸망 이후 폐허와 야만의 시대를 살아가는 한 가족을 통해 인류애를 그려내는 이 만화는 지난해 이탈리아 출간 즉시 1만 부가 팔려나갔고, 최근 벨기에 브뤼셀 만화박물관에 전시되기도 했다. 언어를 비롯한 옛 문명을 철저히 감추며 비밀 일기를 써내려 가는 아버지, 아버지가 죽고 그 일기의 내용을 추적하는 아들. "결국 드러날 수밖에 없는 사랑을 말하고 싶었어요. 종말 이후의 탄생이죠."

    그는 "생사의 경계가 종이 한 장 차이인 삶의 조건을 좋아한다"고 했다. 1차 세계대전을 겪은 증조부와 현대를 살아가는 50대 작가를 맞물려 그려낸 '하나의 이야기'(2013)나, 프랑스 앙굴렘만화축제 최고작품상을 안긴 '전쟁 이야기를 위한 노트'(2006) 모두 마찬가지. "아버지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어요. 내내 전쟁 얘기를 들으며 컸죠. 생존적 몸부림(과거)과 풍요 속의 정신분열(현재)을 항상 고민하며 살게 된 것 같아요."

    신작‘아들의 땅’한 장면. 아들은 야생의 삶을 가르치다 비참하게 죽은 아버지에게서 결국 사랑을 발견한다.
    신작‘아들의 땅’한 장면. 아들은 야생의 삶을 가르치다 비참하게 죽은 아버지에게서 결국 사랑을 발견한다. /북레시피
    출판사와 광고회사 등을 전전하다 1994년 시사잡지 만평으로 데뷔해 '나폴리만화축제 최고만화가상'(2004) '르네 고시니상'(2006) 등을 수상하며 입지를 굳혔다. "이탈리아에서 만화가는 '배고픈 직업'으로 통해요. 웹툰은 거의 없고 여전히 종이 연재만화 위주고요. 최근에야 해외에서 인정받으면서 인식이 달라지고 있어요. 이젠 매번 은행 잔액을 확인하지 않아도 됩니다."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는 아내가 "지피는 선인세로만 7만유로(약 9000만원)를 받는 거의 유일한 만화가"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평균의 20배에 달하는 액수라고 한다. "생계를 위해 다른 직업을 갖긴 했지만 늘 제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을 연구했어요. 회사 관두고 피렌체 국립미술원에서도 공부했어요. 싸우고 2주 만에 그만뒀지만요." 혼자 필체를 완성해 나갔다. "작품에 맞게 그림체를 바꿔요. 이번엔 거친 원시성을 위해 해칭(hatching) 기법을 썼죠. '하나의 이야기'는 수채화로 그렸고요."

    그는 만화가를 넘어 이야기꾼을 자처한다. "만화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한 수단이에요. 소설도 쓰고 연극도 하고 영화도 찍고 있거든요. 그중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만화죠." 다음 달 새 영화 촬영에 들어간다. 차기 만화도 스토리 구상이 끝났다. "장르는 SF예요. 무대는 미래고요. 희망에 대해 말할 겁니다." 여전히 할 말이 많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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