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샤를로테·뫼르소… '현대의 세례'를 받고 부활하다

    입력 : 2017.06.17 00:50

    [이언 매큐언 등 3人 오마주 문학]

    '넛셸' - 자궁 속 태아 햄릿 삼아 성찰
    '로테…' - 여성 편력 변명하는 괴테
    '뫼르소…' - 아랍인 시점서 패러디

    ●넛셸

    이언 매큐언 지음|민승남 옮김|문학동네 | 264쪽|1만3500원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

    토마스 만 지음|임홍배 옮김|창비|576쪽1만5000원

    뫼르소, 살인 사건

    카멜 다우드 지음|조현실 옮김|문예출판사208쪽|1만2800원

    문학이 문학을 낳는다. 유럽 문학의 고전을 패러디하거나, 후일담을 상상해 덧붙이거나, 시점을 뒤집어 본 소설들이 잇달아 번역됐다.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이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착안한 소설 '넛셸'이 최근 나왔다.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이 괴테의 연인이었던 샤를로테를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는 지난 3월 말에 나왔다. 알제리 작가 카멜 다우드가 카뮈의 '이방인'을 아랍인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소설 '뫼르소, 살인 사건'은 지난 1월 말에 나왔다. 후배 작가가 선배를 향해 경배를 올린 '오마주(Hommage) 문학'의 향연이 올해 상반기 번역 문학의 색다른 현상이다.

    이언 매큐언의 '넛셸'(Nutshell)'은 '햄릿'의 대사 한 토막에서 탄생했다. "아아, 나는 호두껍데기 속에 갇혀서도 나 자신을 무한한 왕국의 왕으로 여길 수 있네-악몽만 꾸지 않는다면"이라고 중얼거린 햄릿. 소설 '넛셸'은 그 호두껍데기 속을 여성의 자궁으로 바꾸고, 그 안에서 발육 중인 태아를 화자로 삼았다. "나는 여기, 한 여자의 몸속에 거꾸로 들어있다"며 시작한다. 태아는 어머니가 듣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그가 곧 들어갈 세상의 일을 훤히 알고 있다. 미국과 유럽 연합의 위기, 소득 양극화, 환경 파괴, 심지어 북한의 미사일 발사까지 꿰고 있다. 그는 현실을 지배하는 비관주의도 잘 알고 있다. 작가가 태아의 입을 통해 동시대의 문제에 관한 냉소적 성찰을 펼치는 것.

    기사 관련 일러스트
    /이철원 기자

    태아의 어머니를 포함한 인간들은 배우처럼 희곡 '햄릿'의 상황을 재현한다. 햄릿의 부친은 덴마크의 왕이었지만, 왕위를 노린 동생의 손에 독살된다. 햄릿은 어머니가 한 달도 못 돼 숙부의 왕비가 되자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라고 절규한다. '넛셸'에서 태아의 아버지는 영국의 시인(詩人)이고 출판인이다. 태아의 작은아버지는 탐욕스러운 부동산업자다. 형제는 상이한 계층의 가치관을 대변한다. 하지만 한 여자를 놓고 경쟁한다. 태아의 어머니가 시동생과 불륜 관계인 것. 태아는 어머니와 숙부가 아버지를 독살하는 과정을 자궁 속에서 엿듣고 상상력으로 묘사한다.

    태아가 탯줄을 통해 모친의 심리와 감정, 감각을 느끼는 과정을 재현한 작가의 우아하면서도 해학적인 입심이 이 독특한 소설의 묘미다. 태아는 어머니를 갈망하다가 혐오하다가 이해하다가 마침내 사랑하게 된다. 악몽 같은 현실에 비관하지만 그래도 "나는 느낄 것이다, 고로 존재한다"라며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태아는 세상에 태어난 뒤 "나는 행운의 해변에 닿은 난파선 선원이다"고 중얼거린다.

    토마스 만의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는 괴테의 말년을 상상한 소설이다. 괴테는 청년 시절에 샤를로테를 사랑했지만, 이미 약혼자가 있는 그녀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그 실연의 아픔에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나왔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예순 살을 넘긴 두 남녀가 바이마르에서 우연히 재회했다고 한다. 토마스 만은 그 짧은 실화에 살을 붙여 샤를로테의 시점에서 괴테의 초상을 그려냈다.

    이 소설에서 샤를로테는 인생의 황혼을 맞은 귀부인으로 나온다. 그녀는 유명 소설의 주인공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주변의 시선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한다. '괴테에게 엮였다'고 불평한다. 그녀는 괴테가 첫사랑을 다시 찾지 않은 것에 서운해 한다. 그녀는 괴테를 만나 여성 편력에 대해 쓴소리를 내뱉는다. 괴테는 화려한 수사학으로 변명한다. "인생은 형태의 변화일 뿐이고, 수많은 존재들 속에서도 통일성이 유지되고, 변화 속에서도 지속되는 것이지. 그런즉 당신과 그 여성, 그대들 모두는 나의 사랑 안에서는 유일자야"라는 것. 괴테가 '파우스트'에서 인간을 구원할 사상으로 제시한 '영원한 여성성'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 '뫼르소, 살인사건'은 카뮈의 '이방인' 애독자를 위한 책이다. 다 알다시피 '이방인'의 주인공 이름은 뫼르소. 흔히 "뫼르소는 아랍인을 살해했지만, 법정에서 살인보다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도덕적 비난 때문에 사형 판결을 받았다"고 '이방인' 줄거리를 요약한다.

    알제리 작가 카멜 다우드는 카뮈의 소설을 교묘하게 해체한 뒤 재구성한다. 그는 뫼르소에 의해 살해된 아랍인의 동생을 등장시켜 후일담을 지껄이게 한다. 카뮈의 마지막 소설 '전락'처럼 화자가 특정 상대방을 향해 줄곧 떠드는 고백체로 진행된 것. '이방인'의 문장과 플롯을 골고루 차용하고 변형했기 때문에 '이방인'과 함께 읽을 책이다.

    '뫼르소, 살인 사건'의 화자는 프랑스의 식민지에서 태어난 아랍인의 입장에서 실존의 부조리와 무신론(無神論)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그는 독자를 향해 "자네는 그저 허풍쟁이 한 명을 만나 열심히 수첩에 받아 적은 건지도 몰라"라며 "이건 신의 일대기와도 비슷하지 않나. 하, 하! 아무도 신을 만난 적이 없거든"이라고 눙친다. 패러디 기법의 유희를 맘껏 펼친 소설이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