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이웃' 이정명 "1980년대 연극, 민주화 투쟁 최전선에 있었다"

  • 뉴시스

    입력 : 2017.06.19 09:30

    '2017 서울국제도서전'
    ■4년만에 신작 낸 이정명, '서울국제도서전'서 독자들 만나
    "'선한 이웃', 앞으로 30년 후 변화 생각하는 계기 되길"
    "작품 중간에 몇 번의 작은 반전이 나오고, 마지막 장에 아주 큰 반전이 나온다. 이 마지막 반전을 통해 생각을 전달해보고 싶었다. 앞으로 30년 후에 어떤 변화를 이뤄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했다."

    소설가 이정명(52)씨는 1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7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독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4년 만에 낸 장편소설 '선한 이웃'(은행나무)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선한 이웃'은 1980년대를 배경으로 정보기관 공작원과 권력의 타깃이 된 연극 연출가 간의 대립을 담았다. 1980년대 운동권 궤멸 임무에 투입된 정보 공작원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으로, 생존을 위해 악에 부역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고뇌와 갈등, 최후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 소설은 운동권 인물이 등장하지만 대부분의 인물들은 운동권과 상관없거나 운동권과 적대하는 인물이다. 그 사람들의 눈을 통해 그 때 시대상을 바라보는 것이 또다른 시각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형식적으로는 운동권 외부, 적대자를 통해서 단편적으로 풀어나는 게 아니라 각각의 인물들 입장에서 풀어나갔다. 서너명의 인물들 이야기로서 사건이 전개되고, 그것들이 뭉쳐져서 하나의 큰 사건으로 폭발하고. 각각의 인물들을 보여줌으로써 그 때의 상황을 조금 더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수 있었다."





    이씨는 "1987년 6월 항쟁을 전후한 시점에 주인공들이 서로 갈등하고 거기에서 각각의 선택을 해내가고, 선택에 대한 결과를 묻는 내용"이라며 "우리 사회가 지난 30년동안 어떻게 변해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1987년 항쟁 이후에 굉장한 발전을 이뤘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고 사회적으로 법규와 시스템이 정비됐다. 그 때보다 더 안정적인 나라가 됐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변하지 않은 부분, 외형적인 변화에 미치지 못한 부분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회 지도층들이 그 때와 다름없이 사익을 위해서 제도를 운영하기도 하고, 사회적인 약자들은 그 때보다 더 주변으로 밀려나기도 한다"며 "그런 모습을 보면 누구도 비애감을 느낄 것이다. 30년 후는 횟수로서의 30년은 큰 의미가 없지만, 30년이 하나의 세대를 의미한다고 봤다. 우리가 그 기간 어떤 변화를 이뤘고, 앞으로 30년 후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생각해보길 원했다"고 전했다.

    1980년대와 연극을 왜 연결시켰는지 묻자 "연극은 어떤 특정한 시대, 장소에 내던져진 인간의 모습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문학, 소설도 마찬가지"라고 답했다.

    이씨는 "그 당시에 문학, 사학, 정치학, 철학 등 많은 분야의 지식인들이 부당한 권위주의에 대항해 민주화 투쟁을 해왔지만, 연극은 그 중에서도 민주화 투쟁의 최전선에 있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이어 "많은 대학들이 연극을 통해 현실을 풍자하고 권력을 비판하는 작품을 많이 선보였지만, 권력층에서는 연극인들을 굉장히 탄압했다"며 "80년대에 많은 금지곡들이 있었으며, 영화와 연극은 사전검열을 통해 탄압했다"고 떠올렸다.

    그는 이번 작품을 쓰면서 특별히 힘들었던 점은 없었지만, 세월호 참사와 국정농단 사태때문에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초고를 마치고 세월호 참사를 접하고 한동안 일에서 손을 놓을 수 밖에 없었다. 그 기간이 힘들었다면 힘들었던 기간인 것 같다. 이 소설을 탈고한 직후에도 힘들었다. 끝내고 보름 후에 국정농단 사건이 터졌다. 그 사건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30년 전에 우리가 겪었던 사건들이 오버랩됐고, 비애감이 들어 힘들었다."

    또 기자로서 활동한 경험이 소설 쓰는 데 도움을 줬다고 했다. "소설가로서 기록을 탐구하고 재구성하는데 있어 기자 생활이 큰 도움이 됐다. 기자는 기록을 하는 사람인데, 지면이 한정돼 있어서 형식에 맞는 글을 쓸 수 밖에 없다. 굉장히 방대한 자료를 확보하고도 알고 있는 부분을 다 쓸 수가 없었다. 기록으로 남은 부분과 실제 취재한 부분의 사이의 괴리를 느꼈는데, 다른 사람이 쓴 기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항상 그 이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증을 가졌고, 역사도 하나의 기록물이기 때문에 그 이면에 기록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 관심을 더 가지게 됐다."

    빠른 속도감과 치열한 시대의식, 지적 탐구가 담긴 그의 소설들은 독자들의 폭발적 호응을 얻으며 한국형 팩션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가 쓴 '뿌리 깊은 나무'(2006), '바람의 화원'(2007) 등은 베스트셀러로 등극했으며 드라마로도 제작됐다.

    소설 '바람의 화원'은 2008년 문근영·박신양 주연의 드라마로, '뿌리 깊은 나무'는 2011년 한석규·장혁·신세경이 출연한 미니시리즈로 제작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나는 원작자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한 명의 관객, 시청자일뿐이다. 드라마는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이 전문가다. 나의 원작이 드라마에 작은 아이디어를 제공해준 것으로 만족한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드라마는 한 명의 관객으로서 즐기고 재밌게 봤다."

    2012년 출간된 '별을 스치는 바람'은 영국·미국·프랑스·스페인 등 11개국에 번역·출간됐다. 이 작품으로 2015년 영국 인디펜던트 외국소설상(Independent Foreign Fiction Prize)에 노미네이트됐으며, 올해에는 한국 작가 최초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 프레미오 반카렐라(Premio Bancarella)상의 최종 후보에 올랐다.

    그는 "'별을 스치는 바람'에 윤동주 시인의 시가 20편 이상 수록돼 있다"며 "나의 소설보다도 윤동주 시인의 아름다운 시가 전세계 독자들에게 알려진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선한 이웃'을 소설 제목으로 지은 이유를 묻자 철학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선하다' 또는 '악하다'를 판단하는 데는 3가지 기준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행위에 대한 의도가 있을 것이고, 그 의도로 인한 행위, 그 행위로 인한 결과가 있다. 의도 부분에서 본다면 누구나 선한 의도를 가질 수 있다. 대부분의 의도는 선하다고 생각한다. 선한 의도로 하는 것이 선할 수 있지만, 선하지 않거나 악한 행위가 될 수 있다. 즉, 그 행위가 선하지 않을 경우 그 결과는 악할 수 있다. 또 악한 의도를 선한 의도로 포장해서 결국 악을 행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의도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행위와 결과로 선과 악을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봤을 때 '선한 이웃'의 의미는 선한 이웃이 될 수도 있겠고, 선했으나 악하게 되거나 선을 가장한 악인도 있을 것이다. 그런 반어적인, 이중적인 의미에 주목했다. 이것이 소설의 주제하고도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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