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상의 미국 작가는 왜 영어를 버렸나

    입력 : 2017.06.29 15:39

    [어수웅의 Dear.라이터] 줌파 라히리 인터뷰

    편서풍을 타고 뉴욕으로 가면서 생각했다. 동쪽으로 태평양을 건널 때 우리는 운명에 순응한다고. 바람에 맞서는 게 아니라, 길들이고 부린다. 하지만 지금 만나러 가는 작가는 서쪽으로 태평양을 건너는 중이다. 바람을 거스르고, 운명에 저항한다. 미국 프린스턴대학 줌파 라히리(50) 문예창작과 교수. 퓰리처상을 받게해 준 영어를 버리고, 유전적 인연 전혀 없는 이탈리아어로 산문과 소설을 쓰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번역된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와 '책이 입은 옷'이 그 첫 수확이다.

    줌파의 데뷔작인 소설집 '축복받은 집'은 2000년 퓰리처상을 받았고, 45개 국어로 번역됐다. 미국에서 소설을 가장 잘 쓰는 작가이자, 영어를 가장 능란하게 구사하는 작가 중 한 명임을 부인할 독자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지난달 말 프린스턴 대학 뉴사우스 빌딩 6층 '작가의 방'을 찾았다. 방문에는 사무엘 베케트(1906~1989)의 엽서 크기 사진이 붙어 있다. 아일랜드 출신인데도 프랑스어로 작품을 쓰며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작가.

    ―베케트다.

    "(미소 지으며) 그렇다. 대학 시절부터 나는 그가 좋았다. 영어를 그렇게 잘 쓰면서도, 자발적으로 튕겨 나와 프랑스어로 글을 쓴 작가. 그런데도 그렇게 잘 썼다."

    줌파의 부모는 벵골 출신 인도인. 런던으로 이민 가서 그녀를 낳았고, 줌파가 두 살 때 다시 미국 로드아일랜드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 뒤 정착했다. 그러므로 공식적으로 줌파는 인도계 미국인. 바너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보스턴대 대학원에서 소설을 전공했고, '축복받은 집' '저지대' '그저 좋은 사람' '이름 뒤에 숨은 사랑'까지 4권의 장편과 단편집을 영어로 썼다.

    ―당신은 운명을 거스르는 자일까. 낳아준 인도, 키워준 미국도 아닌, 혈연관계 전혀 없는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다니.

    "내가 생각해도 신비한 일이다. 나는 이탈리아에 완전한 타인이다. 살아본 적도 없고, 친구도 없었다. 하지만 내 운명을 다시 재건축하고 싶었다. 내면의 목소리에 따랐을 뿐이다. 그 목소리에 순응하자, 감정이 깊어지고, 강해졌다. 2015년 이후 영어로는 소설과 산문을 발표하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계획도 없다. 그동안 이탈리아어 소설 40여 편을 썼다. 연말쯤 책으로 묶을 계획이다."

    보스턴대 박사과정 시절, 줌파의 논문 주제는 르네상스 건축과 문학이었다. 1994년 줌파는 이탈리아 여행을 스스로에게 선물하겠다 마음먹었고, 피렌체를 선택했다. 이탈리아와의 첫 만남이었다. "전혀 모르는 언어였는데, 번개에 맞은 느낌이었다. 무분별한, 말도 안 되는 열망을 불러일으켰다"고 했다.

    ―무분별한 열망 때문에 다른 짝(언어)을 탐하다니. (웃으며) 바람피운 것 아닌가.

    "(웃으며) 나는 영어를 내 남편이라고 믿은 적이 없다. 모국어가 없다, 내게는. 얼핏 엄마가 두 명이라 볼 수도 있겠지. 벵골어와 영어. 그런데 둘 다 모국어라 생각하지 않는다. 차라리 고아 같다. 웃기지 않나. 미국은 늘 자신이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왜 다른 나라 말로 쓰는지, 그러고 싶어 하는지,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줌파가 고개를 들어 엽서 속 베케트를 본다. 짧고 날카로워 송곳 같은 머리, 반항 가득한 눈빛. 아일랜드는 800년 동안 잉글랜드의 식민지였다. 게일어를 쓰는 아일랜드에 영어는 제국의 언어. 베케트는 프랑스에 귀화했고, '고도를 기다리며'를 비롯한 소설과 희곡을 영어와 프랑스어로 번갈아 썼다.

    ―다시, 당신에게 베케트는.

    "이탈리아어를 선택하고 공부하면서, 자유를 느꼈다. 물론 영어보다 능숙하지는 않다. 하지만 뭐랄까. 꽃은 활짝 핀 순간이 아니라, 피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쓸 때 가장 아름답다. 영어는 차라리 콤플렉스였다. 베케트는 영어를 거부했고 불어를 선택했지. 아마 지축을 흔드는 경험이었을 거다. 베케트의 여정이 내게 용기를 줬다."

    꼽아보면 베케트뿐이었을까. 헝가리 출신이지만 불어로 소설을 썼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의 아고타 크리스토프, '롤리타'를 영어로 쓴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우크라이나 출신이면서도 영어를 가장 잘 구사하는 미국 작가 3인 중 한 명으로 꼽혔던 '로드 짐'의 조셉 콘래드….

    ―'이중언어 작가클럽' 막내 선언인 셈?

    "글쎄. 나보코프는 분명 영어보다 러시아어를 잘했을 거다. 아고타 역시 불어보다는 헝가리어를 잘했겠지. 그들이 용기를 준 건 맞지만, 그들과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는 더 작고 좁은 언어로 들어왔으니까. 헝가리어를 읽는 사람들은 불어를 쓰는 사람보다 적지 않았을까. 이탈리아? 상대적 소수다.

    하지만 위험이 없으면 자유도 없는 법. 익숙한 언어로 더 잘 쓴다는 게 내 미래는 아니었다. 나를 표현할 새로운 방법을 찾았을 때, 나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어수웅의 Dear.라이터] 줌파 라히리 인터뷰
    화제를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으로 옮겼다. 그가 줌파의 오랜 독자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 오바마 재임 초기에는 '대통령 직속 예술 인문 위원회'의 6인 위원 중 한 명으로 임명받은 바 있다.

    ―어떤 일을 했나.

    "문학, 연극, 클래식 등 학교에서 예술을 직접 체험하거나 창작할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였다. 청소년의 예술 창작 의지를 북돋고,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공교육에서의 예술 부문 강화라고 할까. 오바마와 나는 문화와 예술에 대한 비전을 공유했다. 그는 정열적인 리더이자 작가다."

    '작가들의 작가'로까지 불리는 줌파지만, 문학 바깥의 삶은 어떨까. 미 유력지 '타임'의 남미 전문 기자와 결혼한 그는 고교생 아들과 중학생 딸이 하나씩 있다.

    ―당신의 아이들도 책을 좋아하나.

    "아들이 열한 살 될 때까지 매일밤 책을 읽어줬다. 남편이랑 나랑 하루씩 교대로.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이제는 아이들이 크고 나니, 아이들이 우리에게 책을 읽어준다. 내가 요리할 때면, 딸이 책을 읽는다."

    ―검색하면 모든 걸 찾을 수 있는 스마트폰 세상이다. 왜 굳이 문학을, 책을 읽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대답 대신 자신의 방에 붙어 있는 포스터 하나를 손으로 가리켰다. 'The Purpose of the writer is to keep civiliztion from destroying itself'라는 알베르 카뮈의 '다짐'이 굵고 큰 글씨로 적혀 있다. "문명이 스스로를 망가뜨리지 못하도록 막는 게 작가의 임무다."

    "나는 예술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시켜주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독서라고 생각한다. 아빠가 기자고 엄마가 소설가니까, 우리 아이들은 부모가 집에서 책 읽는 걸 매일 봤다. 건강한 경험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건 옳지 않다. 뇌과학이 인간의 감정 메커니즘을 설명하고 있고, 곧 해결할 거라는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나는 인간의 감정을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문학이라고 믿는다. 문학으로 타인의 감정을 배웠고, 나의 감정을 이해했다. 문학이 타인을 구원할지는 함부로 말할 수 없지만, 최소한 나를 구원했다."

    줌파가 프린스턴 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임명받은 지 만 1년이 지났다. 한국과의 인연을 물었을 때, 그는 자신의 책상에서 서류 더미를 꺼냈다. 학생들 기말시험 과제로, 자신이 좋아하는 외국 작가의 단편을 영어로 번역한 뒤 리뷰를 쓰는 것이라 했다. 줌파는 발음을 힘들어했지만, 살펴보니 한국 작가 김연수와 윤고은의 단편이었다. 그는 "한국에는 아직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이렇게 인연이 생기고 있다"면서 "한국 작가의 작품을 읽어본 건 처음이지만, 흥미로운 에너지가 가득하고 시각도 신선하다"고 했다.

    6층 창문으로 오후 5시의 햇빛이 스몄다. 그녀가 아이들 저녁 챙겨줄 시간이라며 가죽 점퍼와 라이더용 헬멧을 챙긴다.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니, 건물 앞 거치대에 그녀의 민트블루 자전거가 있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작가. 자신의 언어로 규정하지는 않았지만, 줌파가 작가로서 가장 도망가고 싶었던 건 '자기복제'와 '동어반복'으로서의 문학이 아니었을까.

    창작자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익숙함. 기술자라면 숙련이 반갑겠지만, 예술가에게 반복은 독이다. 줌파가 편애하는 베케트는 왜 프랑스어로 쓰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문체 없이 쓸 수 있으니까. 엄청난 자유가 그 안에 있다."

    헬멧을 쓴 줌파가 두 바퀴로 달려갔다. 스스로를 동력 삼아 달리는 자유. 석양 무렵의 햇살이 자유롭게 부서졌다.

    오바마가 사랑한 작가

    독서광인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호명한 작가는 여럿이지만 재임 당시 대통령 직속 예술인문위원회 위원이면서 오바마의 '필독 리스트'에 오른 작가는 줌파 라히리가 유일하다. 이달 중순 서울국제도서전을 찾은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도 줌파의 데뷔작이자 퓰리처상 수상작인 '축복받은 집'을 현금으로 구매해 화제가 됐다. 작가들끼리는 동세대 작가들의 품평을 꺼리는 편이지만, 상당수 국내 작가들은 줌파에 대한 애정을 공공연하게 선언한 바 있다. 소설가 정이현도 그의 재능에 탄복한 독자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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