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생 작가·구속·회심… "여든 넘어도 나는 쓴다"

    입력 : 2017.07.10 03:06

    [신작 소설집 '바람의 날개' 펴낸 등단 60주년 소설가 정연희]

    대학 시절 내내 성경 무시하다가 구치소 생활하며 신앙에 눈떠
    "작가 삶에 신앙이 녹아있다고 기독교 문학? 그냥 '문학'일 뿐"

    소설가 정연희(81)씨가 올해 등단 60주년을 맞아 신작 소설집 '바람의 날개'(개미)를 냈다. 정씨는 1957년 이화여대 재학 중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한 뒤 지금껏 장편 30여 권, 단편집 9권을 냈다. 정씨는 한국 소설가협회장과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을 지냈고,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회원이다. 지난 5일 서울 광화문 조선일보에서 정씨를 만났다.

    “신앙 생활을 한 뒤 삶에 눈을 뜨니 글을 낑낑거리고 쓴 적이 없다”고 말하는 소설가 정연희씨.
    “신앙 생활을 한 뒤 삶에 눈을 뜨니 글을 낑낑거리고 쓴 적이 없다”고 말하는 소설가 정연희씨. /이명원 기자
    ―등단 60주년을 맞은 소회는?

    "나는 할 줄 아는 게 글쓰기밖에 없었다. 나와 함께 등단한 분이 박경리씨였다. 남들이 등단 60주년이라고 꼭 집어서 얘기하는데 덜컥 겁이 나더라. 내가 60년 동안 무슨 짓을 하고 살았나. 며칠 동안 뒤숭숭했다. 앞으로도 누에가 실을 잣듯이 계속 글을 쓰겠지."

    ―등단하자마자 유명해졌다.

    "여대생이 등단했다고 해서 '사상계'를 비롯한 여러 잡지에서 청탁이 왔다. 머리에 든 게 없으니 겨우 쥐어짜서 원고를 넘겼다. 1965년 조선일보에 장편 '불타는 신전'을 연재했다. 1968년 경향신문 청탁을 받아 38개국을 혼자 돌며 문명비평기를 연재한 적도 있다."

    ―문단에선 '1960년대에 배우 신성일이 작가 정연희를 따라다녔다'는 전설이 아직도 떠돈다.

    "내가 서른 살도 안 된 유부녀였을 때의 얘기가 조금 과장됐다. 첫 남편 홍성유(소설가·2002년 작고)라는 사람은 파락호 같았다. 맨날 술이나 마시고 노름이나 하고 여자 쫓아다니고…. 그건 나한테도 책임이 있었다. 내가 자기를 싫어하는 걸 아니까 그러고 다녔지. 그러다 영화 시사회에서 신성일씨를 우연히 만났다. 젊은 여성 작가니까 그분도 호기심이 생겼겠지. 그런데 그분이 문학을 알아야 무슨 얘기를 하지. 그냥 얼굴이나 본 거야."

    인기 작가로 주목받았던 서른다섯 무렵의 모습.
    인기 작가로 주목받았던 서른다섯 무렵의 모습.
    ―1970년대 이후 기독교 작가로 꼽히고 있다.

    "이화여대를 다녔지만 제일 싫었던 게 기독교 문학과 채플 시간이었다. 마태복음을 보니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하는데, 나는 '남자들이 애를 낳나'라며 성경을 무시했다. 등단작도 수녀가 전쟁 상황 속에서 수녀원에서 도망치는 이야기였다. 지금 보면 너무 창피하다.'사람이 제 재주보다 더 유명해지면 나중에 혼난다'는 말처럼 내가 1973년 간통 사건으로 피소됐지 않느냐."

    ―그 사건을 계기로 기독교에 귀의했나.

    "1973년 8월에 김대중 납치 사건이 일어났고, 내가 9월에 간통죄로 피소됐다. 당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어났다. 나는 지금도 김대중 사건에 쏠린 사회의 이목을 돌리려고 중앙정보부가 개입해 간통 사건을 부풀렸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저질 드라마 같은 일도 끼어있었다. 그때의 일을 200자 원고지 2000장 분량으로 기록해 놓았고, 기회가 되면 출간할 생각이다. 나를 40일 동안 닦달한 담당 검사가 나중에 변호사로 유명해져 방송 프로 진행도 하다가 여가수랑 스캔들을 일으킨 사람이다. 나는 구치소에 72일 동안 수감됐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간통 상대방(김응삼 전(前) AK 코리아 고문)은 심지어 간첩으로 몰려 함께 나오지 못했다. 그때 처음으로 하나님께 도와달라는 기도를 했고, 그 사람은 1년 뒤 나왔다.(두 사람은 1975년 결혼했다. 남편은 2008년 작고했다.)"

    ―신앙 생활과 문학 창작이 충돌하는 경우도 있지 않는가.

    "나는 '기독교 문학'이란 말을 싫어한다. 신앙이 작가의 삶 속에 용해돼 나오는 작품이면 문학이지 굳이 기독교 문학이라고 할 필요가 있는가. 도스토옙스키는 기독인이었지만, 누가 그를 기독교 작가라고 하는가. 그는 사형당하기 직전에 러시아 정교회의 금빛 돔에 세워진 십자가가 햇빛을 받아 이마에 반사되자 완전한 평화를 느꼈고, 그 순간 황제 특사를 받아 살아났다."

    ―신앙이 글쓰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모든 씨앗에 씨눈이 있듯이, 인간 영혼에도 씨눈이 있다. 나는 구치소에서 씨눈이 벗겨졌다. 신앙 생활 이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게 다 소설이 된다. 앞으로 8·15 직후부터 6·25까지를 다룬 장편을 연재할 계획이다."

    ―등단 60주년 신작 소설집은 여성 혐오와 이념 갈등 같은 현실 문제를 많이 다뤘다.

    "작가는 현실을 증언해야 한다. 소설은 신변잡기를 쓰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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