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축 성장에 지친 한국인… '월든' 나침반에서 길을 찾다

    입력 : 2017.07.11 03:05

    [내일 데이비드 소로 탄생 200주년]

    46종 출간… 김석희 등 번역 잇따라… 하버드 엘리트의 '자연 속으로'
    "왜 남의 북소리에 귀를 기울이나" 돈벌이·경쟁 지친 현대인의 '로망'

    헨리 데이비드 소로

    내일(12일)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가 태어난 지 200주년 되는 날. 미국 초월주의 문학의 꽃이자 최초의 생태 문학으로 꼽히는 '월든'의 작가다. 하버드 대학 출신 엘리트면서도 모든 것을 버리고 월든 호숫가로 들어가 직접 오두막집 짓고 밭 갈며 살았던 한 인간의 독립선언문. 얼핏 보면 '좌절한 인생'이지만, 문명을 비판하고 자연을 예찬하며 "내 인생은 내 의지대로 살겠다"는 소로의 19세기 선언에 21세기 현대인들이 더 호응하고 있다.

    ◇탄생 200주년, 출간 잇따라

    인터넷 서점 YES24에 따르면, 국내의 소로 관련 서적은 가장 많이 팔린 '월든'(강승영 옮김·은행나무 刊) 등 총 23개 출판사의 46종. 번역자만 21명에 달한다. 최근에도 탄생 200주년에 맞춘 책들이 잇따라 출간됐다. 번역가 겸 소설가 김석희(65)의 새 번역 '월든'(열림원 刊)과 청년 시절 그의 일기를 모은 '소로의 일기'(갈라파고스 刊), 또 소로의 야생화에 대한 사랑을 그림과 글로 옮긴 '소로의 야생화 일기'(위즈덤하우스 刊) 등이다.

    소설가 김훈의 유머 담은 표현을 빌리면 김석희는 '번역으로 집을 산 대한민국 유일의 번역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데즈먼드 모리스의 '털 없는 원숭이', 쥘 베른의 '해저 2만리'를 각각 일어·영어·불어로 원전 번역하는 등 4개 국어에 능통하다. 지금까지의 번역 리스트만 300여 종. 그런데 왜 20여 명이 이미 한글로 옮긴 '월든'을 번역했을까. 그는 "죽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고전을 나만의 언어로 옮기고 싶은 욕심이 있다"면서 "소로 탄생 200주년에 맞춰 몇 년 전부터 준비했다"고 말했다.

    ◇생략 등 모호한 문장으로도 악명

    미국 문학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히지만, '월든'은 역설과 반어법, 과장과 생략, 논리적 비약, 엉뚱한 비유 등 모호한 문장으로도 악명 높다. 김석희씨는 "프린스턴대학 출판본을 중심으로 일어와 불어 판본을 참조해 오류를 최소화하려 노력했다"면서 "덤불 숲에 길을 내는 일만큼이나 지난했지만, 오솔길이나마 생겼다면 다행"이라고 했다.

    소로가 살았던 월든 호숫가 인근의 측백나무 숲. 열림원의 ‘월든’에 포함된 주변 풍경 사진 66점 중 하나다. 작은 사진은 소로의 오두막집 재현. 소로가 원래 지었던 오두막집은 현재 집터만 남아 있다.
    소로가 살았던 월든 호숫가 인근의 측백나무 숲. 열림원의 ‘월든’에 포함된 주변 풍경 사진 66점 중 하나다. 작은 사진은 소로의 오두막집 재현. 소로가 원래 지었던 오두막집은 현재 집터만 남아 있다. /열림원

    사실 '월든'의 씨앗은 소로가 평생 쓴 일기였다. '소로의 일기'는 그가 죽기 전까지 쓴 39권의 일기 중에서 20~34세 때의 일기를 모은 것. '소로의 야생화 일기'는 평생 자연을 사랑했던 생태주의자 소로의 야생화 관찰기다. 소로의 제자이자 '작은 아씨들'의 작가인 루이자 메이 올컷의 기록에 따르면, 1862년 소로가 세상을 떠났을 때 콩코드 교회에 놓인 그의 관은 야생화로 뒤덮였다.

    ◇19세기 '월든'이 무엇을 주길래

    '월든'의 핵심은 흔히 다음 구절로 요약된다. "왜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 그렇게 필사적으로 서두르고 또 그렇게 필사적으로 사업에 몰두해야 하는가? 동료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그것은 다른 사람이 치는 북소리를 듣기 때문일 것이다. 그 북소리가 어떤 박자를 갖고 있든, 자기가 듣는 음악에 보조를 맞추도록 내버려 두자."(열림원 '월든' 506쪽)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에게 나침반을 맞추는 삶. 압축 성장의 속도와 물량 공세에 지친 한국인들에게, '월든'의 삶은 차라리 로망이자 판타지다. 미국 '소로 전집'(전 20권·휴턴미플린 刊) 편집자 브래드퍼드 토레이는 "세상살이가 너무 버겁다면, 돈벌이에 휩쓸려 파란 녹이 영혼을 파먹어 들어가고 있다면, 한 번 쓰면 없어질 헛것들을 위해 인생을 팔아넘길 위험에 처해 있다면, 소로에게서 자신을 바로잡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썼다.

    세상 떠난 '무소유'의 법정 스님(1932 ~2010)이 늘 머리맡에 뒀던 책으로도 유명하지만, '월든'은 사실 매년 휴가 때마다 추천 도서로 꼽히는 인기 베스트셀러다.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더 있을까. 역시 '소로의 팬'을 자처하는 문학평론가 정여울씨는 이렇게 말했다. "압축적 고도성장을 거치면서 한국인들은 집단적 상실감을 겪어 왔다. 어쩌면 자연과 함께하는 삶에 대한 강렬한 노스탤지어의 발로가 아닐까. 월든은 도시인의 잃어버린 자연을 향한 동경을 강렬하게 추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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