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리시 페이션트의 입으로 준 자두

  • 한은형 소설가

    입력 : 2017.07.13 17:00

    [한은형의 탐식탐독]

    [한은형의 탐식탐독]
    강원도에 머물고 있다. 사방이 초록이고, 새들은 낮밤을 잊고 지저귄다. 새들에게 질세라 나뭇잎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바람에 몸을 비비며 소리를 낸다. 그리고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책상 위로는 가로로 긴 창이 나 있고, 그 창으로 오디나무가 흔들리는 게 보인다.

    더 바랄 것이 있다면, 자두나무가 있었으면 좋겠다. 꼭 자두가 먹고 싶어서만은 아니다. 노랑이거나 연두이거나 빨강이거나 아니면 그 색들이 섞인 자두 열매가 나무에 매달린 걸 보고 싶어서다. 자두 냄새가 섞인 바람 냄새를 맡고 싶어서다. 땅에 떨어진 자두를 먹다 사람이 오면 뽀르르 달아나는 다람쥐를 보고 싶어서다(다람쥐가 자두를 안 먹을 수도 있겠군요). 자두가 나오는 소설을 하나 쓸 수 있을까 싶어서다.

    '자두 소설'에 감명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마이클 온다치의 '잉글리시 페이션트'다. 이 책은 1992년 부커상을 받았고, 1996년 앤서니 밍겔라가 영화로 만들었다. 2010년에는 국내에 출간되었다. 영화가 나온 해 영화를 보았고, 또 국내에 책이 출간된 해 책을 읽었다. 영화는 좋았고, 책은 더욱더 좋았다. 몇 문장을 읽고 나서, 나는 이 소설의 냄새가 몸에 배는 것을 느꼈고, 또 그게 쉽게 날아가지 않으리라는 걸 직감했다.

    채 열 장을 읽기도 전에 자두가 나오는 부분을 만났다. "그는 검은 얼굴을 돌려 회색 눈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는 손을 주머니에 넣는다. 그녀는 이로 자두 껍질을 벗겨서 씨를 빼고 과육을 그의 입에 넣어준다." 그가 잉글리시 페이션트, 그러니까 '영국인 환자'고 그녀는 간호사다. 환자는 극심한 화상으로 몸 대부분이 타버렸고 제대로 먹을 수 없다. 그런 사람이라 부를 수 없는 처지인 사람에게 간호사는 자두 과육을 넣어준다. 그녀의 주머니에 들어 있었기에 그녀의 체취가 묻었을.

    '검은 얼굴'과 '회색 눈'이라는 모노톤 세계에 자두가 들어옴으로써 환해지는 것이다. 작가는 자두의 색을 묘사하지 않는다. 청자두인지 붉은 자두인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상상할 수 있다. 자두의 노란 속살을 그의 입에 넣어주는 여자의 손에 대해서도.

    이것만으로 내가 이 소설을 '자두 소설'이라 부르게 된 건 아니다. 책 표지도 자두색이다. 화상을 입은, 여자가 자두를 먹여주는 그 남자가 "자줏빛보다도 진한" 몸을 가졌다고 작가는 적고 있다. 나는 이 '자줏빛'을 '자두빛'으로 생각하고 싶었다. 독서란 원래 제멋대로, 제 흥으로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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