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장 풀린 옛 기록 보니… 소련의 독재자는 훨씬 더 잔인했다

    입력 : 2017.08.04 23:42

    '러시아 文書庫 전문가'인 저자
    90년대 이후 공개된 기록 파헤쳐 스탈린의 행적 치밀하게 분석

    직접 탄압 계획 짜고 증거 조작… 재판 각본 작성 참여도 밝혀져

    '스탈린, 독재자의 새로운 얼굴'
    스탈린, 독재자의 새로운 얼굴 | 올레크 V. 흘레브뉴크 지음 | 유나영 옮김 | 삼인 | 647쪽 | 3만5000원

    "확실히 그들(스탈린과 마오쩌둥)은 공통점이 많았다. 둘 다 외딴 시골 지방 출신이며 아버지를 경멸했다. 책을 많이 읽어 독학했고 추상적·철학적 주제와 급진 사상에 경도됐다. 시를 썼고, 불굴의 의지를 지닌 반란자와 호걸을 이상화한 문학 작품을 즐겨 읽었다. 외국어에 재능이 없었으며 과단성을 갖췄고 무자비했다."(487쪽)

    사람들은 러시아 제국의 변방이었던 조지아에서 태어나 세계 공산주의 종주국의 최고위직에 오른 이오시프 스탈린(1879~1953·이 책은 그의 실제 출생년이 1878년이라고 썼다)에게서 두 얼굴을 본다.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냉혈 독재자'의 얼굴과,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소련을 강대국으로 만든 '성공한 지도자'의 얼굴이다.

    스탈린 사후 대부분의 세계인은 부정적인 얼굴을 보았으나, 최근 러시아인 사이에서 과거의 향수에 힘입은 긍정적인 재평가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 6월 '세계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을 꼽으라'는 러시아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38%가 스탈린, 34%가 푸틴이라고 답했다.

    1945년 7월 포츠담 회담에 모인 미·영·소 정상. 왼쪽부터 처칠(영), 트루먼(미), 스탈린(소).
    1945년 7월 포츠담 회담에 모인 미·영·소 정상. 왼쪽부터 처칠(영), 트루먼(미), 스탈린(소). /NARA
    '러시아 문서고(文書庫)의 달인'이자 '서방 학계에 친숙한 스탈린 시대사 전문가'인 저자 흘레브뉴크(58) 러시아 국립고등경제대 수석연구원이 2015년에 출간한 이 책은 최근의 이 같은 현상에 대한 학문적 반박인 셈이다. '1990년대 이후 어마어마한 분량의 러시아 문서가 쏟아져 나왔는데, 당신들은 이 자료를 제대로 보기나 했느냐?'는 것이다. 그는 흥미롭지만 의심스러운 일화나 풍문을 배제하고, 공식 문서와 편지, 믿을 만한 증언들에 의지해 스탈린이 역사에 남긴 족적을 파헤친다.

    그 결과는 '스탈린 신화 깨기'다. 그는 체제와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국민을 혹독하게 다뤘다. 스탈린 통치 20여 년 동안 매년 평균 100만명이 총살·구금·추방됐고, 최소 6000만명이 탄압과 차별을 겪었다(1953년 소련 인구는 1억8700만명). 1937년의 '대숙청' 기간에는 1년 반 동안 160만명을 잡아들여 70만명을 살해했다.

    '혁명이 완성되면 사멸할 계급' 취급을 받았던 농민에 가해진 고통은 특히 극심했다. 저자는 "스탈린은 농민을 적대시해 과거 농노(農奴)의 지위로 격하시켰다"고 말한다. 무리한 집단농장화 사업을 벌인 뒤에 대기근이 겹쳐 1932~33년 500만~7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국가의 산업화를 위해 의도적으로 농민을 희생시켰던 것이다.

    이것은 일부의 주장처럼 실무자들의 과오였을 뿐일까? 새로 나온 문서들은 스탈린이 직접 탄압 계획을 짰고 수시로 증거 조작과 재판의 각본 작성에 발 벗고 나섰다는 사실을 밝혀 준다. 문서에 메모하는 방식으로 고문을 직접 지시한 경우도 숱하다. 1937년엔 "첩자의 이름을 대지 않는 이 자를 구타할 것" "계속 캐서 이 폴란드 첩자 쓰레기를 모조리 소탕하라"고 명령했다.

    무엇이 이 폭정을 만들었을까. 스탈린에게는 체제를 유지하는 절대적 독재성,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매몰된 교조적이고 경직적인 세계관, 타산적이고 합리적인 권력 장악 스타일이라는 특징이 있었다. 여기에 조언을 무시하고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채 신념을 밀어붙이는 성격이 더해졌다. 1938년 두만강 인근에서 일본군과 교전한 하산 전투 때 지휘관에게 "폭격으로 조선인이 다칠 수 있다는 걸 왜 걱정하느냐"고 질책했고, 1945년 유고슬라비아가 소련군이 저지른 강간 사건들에 대해 항의하자 "지옥을 겪고 나와 여자들한테 좀 몹쓸 짓을 했기로서니 뭐 그리 대수냐"고 반문했다.

    1922년 모스크바 교외 고르키에서‘혁명 동지’레닌(왼쪽)과 함께한 스탈린.
    1922년 모스크바 교외 고르키에서‘혁명 동지’레닌(왼쪽)과 함께한 스탈린. 흘레브뉴크의 책은 이듬해인 1923년 두 사람 사이에서 권력 투쟁이 벌어졌다고 서술한다. /도서출판 삼인
    이 꼼꼼한 전기엔 약점도 많다. 도대체 어떤 환경이 이 공전(空前)의 독재자를 배태했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그가 태어난 캅카스 변경 지역의 폭력적 문화, 말년의 뇌동맥 손상 정도를 언급할 뿐이다. 독·소 전쟁 초기 스탈린의 전략적 무능함을 강조하면서도 어떻게 스탈린그라드 전투 이후의 승리가 가능했는지 서술하는 데엔 인색하다. 6·25 전쟁이 스탈린의 승인을 받은 북한의 남침이란 사실을 분명히 하면서도 '스탈린의 실용적 외교 정책'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분석을 내린다.

    그럼에도 이 책은 새롭게 발굴된 구소련 문서들을 통해, 그동안 피상적으로 알려졌던 스탈린의 부정적인 유산에 대해 훨씬 구체적이고 치밀하게 분석했다는 의의를 지닌다. 저자는 말한다. "스탈린을 지지했던 많은 사람이 자기가 숙청될 차례가 됐을 때에야 그 선택을 후회했다. 희생자들이 너무 늦게 후회하게 하는 것, 이 점이 스탈린의 천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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