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홍신이 말하는 운명적인 남녀의 인연·사랑

  • 뉴시스

    입력 : 2017.08.07 09:31

    김홍신 '바람으로 그린 그림' , 책
    "분명한 것은 그녀가 본디 내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어둠 속에서,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길에서 그녀는 내 손을 힘주어 잡고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죄를 고백하듯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나……. 시집가게 됐단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소식을 전하듯이 말했다. 흔들리는 시선으로 말없이 서있는 나를 끌어안고 잠시 내 이마에 입술을 댄 그녀는 울음을 참는 듯했다. 내 등을 몇 차례인가 토닥거리고 돌아서서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뛰었다. 그 순간 난 지구가 폭발하여 모든 게 사라졌으면 싶었다."(13쪽)

    국내 첫 밀리언셀러로 통하는 소설 '인간시장'으로 유명한 소설가 김홍신(70)씨가 장편소설 '바람으로 그린 그림'을 냈다.

    그간 역사적·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소설들을 다수 집필했던 작가는 근래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소중한 감정인 '사랑'에 대해 천착하고 있다.

    전작 '단 한 번의 사랑'에서 가슴 깊이 묻어둔 첫사랑을 다시 만나 자신의 모든 걸 바쳐 그 사랑을 완성시키는 연인들의 모습을 그렸다면, 이번 신작에서는 마음속에 비밀을 간직한 채 침묵의 사랑으로 곁을 지키는 또 다른 성숙한 연인의 모습을 소설화했다. 신작 '바람으로 그린 그림'은 사랑의 상처 때문에 더 이상의 사랑을 두려워하는 여인과 가톨릭 신부가 되려던 삶의 진로를 그 여인으로 인해 바꾼 남자의 운명적 사랑 이야기다. 소설은 두 주인공을 1인칭 시점의 화자로 번갈아 등장시키면서 이들의 감정 변화를 면밀히 따라간다.

    주인공들의 대화와 독백을 통해 사랑의 매개를 보다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 덕분에 사랑의 감동은 극대화된다. 성당에서 복사로 섬기며 신학대학을 꿈꾸던 학생이 7살 연상의 성가대 반주자를 만나 서로를 세례명인 '리노'와 '모니카'로 부르며 세속으로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그려나가는 지고지순한 여정은 진실한 사랑의 가능성과 가치를 보여준다.
    외아들을 큰집의 양자로 보낼 수 없어 집안 어른들에게 면박을 당하면서도 보란 듯이 자식을 의사로 키워 내보이려는 리노 어머니가 소문난 모범생이었던 모니카를 불러 리노의 공부를 도와 달라 부탁한 것을 계기로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의 감정이 무르익는가 하면, 모니카가 느닷없이 나타나 해코지하는 옛 약혼자 준걸의 횡포에 못 이겨 은행원과 도망치듯 결혼을 결심하게 되자 리노가 절망에 휩싸이는 등, 소설은 사랑의 고조와 좌절을 오가며 성숙해져가는 이들의 모습을 세밀하게 담아낸다.

    "어른들이 세월은 유수 같다는 말을 해도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결혼을 하고 보니 이런저런 마음고생을 하면서도 어느새 겨울 문턱에 서게 되었다. 결혼한 뒤에 리노와 나는 전화통화를 하지 않았다. 그건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 때문이기도 했지만 상대의 마음 자락을 밟지 않으려는 생각때문이어다. 편지는 딱 두 번 주고 받았다. 서로의 생일에 편지와 선물을 동봉해 보냈다."(185~186쪽)

    "세월이 흐르면 변하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리노는 지금쯤 안정을 되찾고 떠나버린 나쯤이야 잊어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가겠지. 피그말리온은 정성스럽게 여인상을 조각하여 갈라테이아라 이름을 짓고 그 아름다움에 반해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그의 지극한 사랑에 감동한 여신 아프로디테는 여인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는 것이다. 리노는 자신이 전생에 피그말리온이라고 했다. 갈라테이아인 나는 리노의 사랑을 받았으나 미래를 함께 할 수는 없었다. 이런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서러웠다. 이제 리노를 다시는 못 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191쪽)

    김씨는 "평범하지 않은, 운명적인 남녀의 인연과 사랑 얘기를 써보고 싶었다"며 "제 추억을 일부 꺼내고 상상을 한껏 보태서 말이다"고 말했다.

    "벼락같고 피뢰침같이 단번에 감전되는 사랑이 근사한 건 줄 알았는데 그 순간을 영혼의 창고에 쟁여두기 위해서는 사랑의 온도가 100도가 아니라 36.5도라야 한다는 걸 이제야 겨우 알아차렸습니다. 남녀 간의 뜨거운 열정으로 시작한 관계도 결국은 휴머니즘으로 발전해야 그 아름다움이 지속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원고지를 닦달했습니다. 바람은 그물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설을 쓰면서 '사랑과 용서로 짠 그물에는 바람도 걸린다'는 글을 책상 앞에 써 붙였습니다. 이 소설을 읽는 분들은 바람도 걸려드는 사랑의 그물을 짜보았으면 합니다." 352쪽, 1만4000원, 해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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