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간 북한 연구했지만, 나도 김정은 이해 못하겠다"

    입력 : 2017.08.09 03:05 | 수정 : 2017.08.09 07:58

    [신간 '북한' 펴낸 이정식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

    스칼라피노 교수와 함께 쓴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개정판
    "1945년 9월 런던 회의로 미·소 관계 냉각된 직후 소련이 北 단독정부 수립 지령"

    "최근 김정은의 행태는 나도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재미(在美) 원로 학자 이정식(86·경희대 석좌교수)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는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으로 연일 국제사회를 들끓게 한 김정은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60년간 북한 문제를 연구해온 한국 현대 정치사 연구의 권위자인데도 그랬다. 그는 현재의 북한에 대해 "기존 '수령 중심 체제'에 비추어도 벗어난 행동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은은 포악한 모습으로 집권을 시작해 핵무기 하나 가지고 외교와 무역을 해결하려는 큰 도박을 하고 있는데… 너무나 무모하고 위험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교수는 최근 미국에서 새 저서 '북한: 획일적 국가 수립(North Korea: Building of the Monolithic State)'을 출간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버윈에 사는 이 교수를 8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이정식 교수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의 개정판인‘북한’을 낸 이정식 교수는“북한의 실체를 잘 모르는 영미권 학생과 지식인 독자를 대상으로 다시 썼다”고 말했다. /정경열 기자
    '북한'은 2011년 별세한 로버트 스칼라피노(Scalapino)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 명예교수와 공동 저자로 돼 있다. 1972년에 이정식·스칼라피노 공저로 출간된 고전적 명저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Communism in Korea)'가 원본이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학회 최우수 저작상을 받았고 한국에서는 한때 금서(禁書) 취급을 받았던 책이지만 1980년대 대학생들 사이에서 필독서처럼 읽혔다. 북한에 대한 객관적·체계적 정보에 목말랐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전체 15챕터(장·章) 중에서 넷을 뽑았고, 거기에 상당 부분 가필했다"고 말했다. 시기는 1945년부터 북한 수령체제가 확립되는 1972년까지다. 예전에는 자료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추측해야 했던 부분이 많았으나, 옛 소련 붕괴 이후 공개된 많은 문서에 힘입어 더욱 자신 있는 해석을 내릴 수가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한국 학자들이 별 관심을 갖지 않았던 1945년 9월의 '런던 회의'를 주목했다. "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 외무장관들이 전후 처리를 위해 모인 회의였습니다. 한반도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게 되지요." 소련의 스탈린은 이 회의에서 전후 일본 통치 참여와 지중해 진출을 위한 북아프리카 트리폴리타니아 할양을 요구했지만 미국과 영국이 일축해 버렸다.

    런던 회의는 9월 15일쯤 결렬됐고, 이로써 약간 온기가 남아 있던 미·소 관계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닷새 뒤인 9월 20일 스탈린은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에게 중요한 지령을 내린다. '북조선의 광범위한 반일(反日) 민주주의 정당 연합을 토대로 부르주아적 민주주의 정권을 설립하라'는 것이었다. "이 지령에는 미군과 교섭하거나 협조하라는 말은 전혀 없었습니다. 소련 점령 지역에 단독정부를 세우라는 지시였던 것이죠."

    1945년 9월 '북한 단독정부 수립'이라는 소련 지령에 따라 1946년 2월에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가 수립되고, 1948년 북한 정권 수립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분단 고착화의 이유를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촉구한 1946년 6월 이승만의 정읍 발언이나 그해 미·소 공동위원회의 실패 등에서 찾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시각이다. 이 교수는 "스탈린의 지령은 이승만이 아직 귀국하기도 전에 내린 것"이라고 했다.

    스탈린과 김일성이 6·25전쟁을 일으킨 동기에 대해선 "역시 미국의 정책이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미국은 남한을 태평양 방위선에 포함하지 않고 방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난 뒤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종전 정책을 180도 바꿔 파병을 결정했다. 중국이 공산화되고 소련이 원자폭탄을 개발하면서 '그대로 뒀다가는 서유럽도 위험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진 결과라는 것이다. 인천 상륙 이후 퇴각하던 김일성은 소련 참전을 애걸하는 편지를 스탈린에게 보냈으나, 스탈린은 '소련 전력으로는 20년 뒤에야 미국을 대적할 수 있고, 지금 개입하면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 있다'고 거절했다. 이 일은 이후 김일성이 소련을 불신하는 계기가 된다.

    이 교수는 6·25전쟁 이후 김일성이 확립한 수령 중심 체제를 세계인들이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수령·당·인민의 '삼위일체' 개념이며, 모든 지혜와 생각이 수령으로부터 나온다고 믿는 체제"라는 것이다. 지금 김정은의 북한은 그 체제를 계승한 변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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