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사라'로 필화… 외설작가로 찍혀 괴로워했다

    입력 : 2017.09.06 03:10 | 수정 : 2017.09.06 08:45

    - 마광수, 자택서 목매 숨진채 발견
    구속, 해직·복직 반복에 우울증 "대학·문단서 왕따, 날 변태 매도"
    퇴직후 지인에 자주 "억울하다"

    작년 9월에 쓴 자필 유서 나와

    논쟁적인 작가 마광수(66) 전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가 5일 숨졌다. 그의 시신은 이날 오후 1시 35분쯤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자택에서 같은 아파트에 사는 누나가 발견했다.

    그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스카프로 목맨 채 숨져 있었다. 주변에서 '내 시신 처리와 재산 양도를 누나에게 맡긴다'는 내용이 담긴 A4 용지 한 장 분량의 친필 유서가 발견됐다. 작년 9월 3일에 작성한 걸로 적혀 있었다. 마씨는 1985년 결혼한 뒤 1990년 이혼했고, 자녀 없이 독신 생활을 이어왔다. 최근 우울증 증세가 심해지자 병원에서 입원을 권유받았으나 거부했고 약 처방만 받아 복용해 왔다고 경찰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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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전 자택에서 -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가 2015년 9월 자택에서 자신이 쓴 책들을 세워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마 교수는 당시 본지 인터뷰를 할 때도 우울증 증세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진한 기자
    마씨의 시신을 처음 발견한 누나 조모(74)씨는 "동생이 작년 학교(연세대)를 나온 뒤 집에만 주로 머물렀다"며 "퇴직 후엔 몸도 자주 아팠고 '외롭다' '써온 글들도 다 부질없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했다. 이어 "학교에 있을 때 국문학과에서 교양학부로 밀려난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강했다"고 했다.

    마씨는 1977년 월간 '현대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데뷔해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1989), 수필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1989) 등 자유분방한 성담론을 내세우며 세간을 뒤흔들었다. 1991년 출간한 소설 '즐거운 사라'가 이듬해 외설 시비를 낳으며 마씨의 인생을 바꿨다. 검찰에 구속된 마씨는 1992년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고, 1995년 3심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그해 연세대에서도 해직됐다. 당시 '즐거운 사라'를 출판한 청하출판사 대표 장석주(62) 시인은 "이 사건이 마광수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은 것 같다"면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앓으며 약을 복용할 정도로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작가 마광수는
    1998년 김대중 정부에 의해 특별사면·복권됐고, 연세대에도 복직했지만 풍파는 끊이지 않았다. 마씨는 윤동주 시인 연구로 박사 학위를 따 1979년 28세 나이로 홍익대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고 1984년부터 모교인 연세대 강단에 섰다. 2000년 '연구 실적이 부실하다'는 이유로 재임용 부적격 판정을 받았고, 2006년엔 '즐거운 사라' 본문과 남녀의 성기가 노출된 사진 등을 본인의 홈페이지에 올렸다가 음란물 시비를 낳으며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다. 마씨는 "배신감에 죽고 싶다"거나 "음란의 기준이 뭔지 모르겠다"며 좌절감을 토로했다.

    작년 8월 정년 퇴임 후 우울증이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직 경력 탓에 자격을 잃어 퇴임 이후 명예교수가 될 수 없었다. 퇴임 당시 "줄곧 국문과의 왕따 교수로 지낸 것, 그리고 문단에서도 왕따고, 책도 안 읽어보고 무조건 나를 변태로 매도하는 대중들, 문단의 처절한 국외자, 단지 성(性)을 이야기했다는 이유만으로 평생을 따라다니는 간첩 같은 꼬리표. 그동안 내 육체는 울화병에 허물어져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다"는 심경을 밝혔다.

    작년 10월 연세대 학보 '연세춘추' 인터뷰에서 "요즘 너무 우울해서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어디에서든 강의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기회가 생기지 않아 많이 아쉽기도 하다"고 했다. 지인인 오모(여·53)씨는 "그가 퇴임 후 '재직 당시 연대 교수들에게 따돌림을 당해왔다, 퇴임하면서 학교와 학생들로부터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해 억울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최근엔 매일 소주 한 병씩 마신다고 들었다. 지난달 31일 마씨를 만났는데 '내 인생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며 가슴 통증을 호소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죽기 전에 대한민국이 솔직해지는 걸 보고 싶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가장 최근인 지난 1월에도 시집 '마광수 시선'을 내며 집필 활동을 이어갔다. 출판사 페이퍼로드 최용범 대표는 "마지막에 남는 건 시·소설뿐이라면서 계속 글을 썼다"고 전했다. 빈소는 서울 순천향대병원, 발인은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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