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싫어지면 詩集을 펼칩니다

    입력 : 2017.09.07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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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세사르 바예호 시선집|고혜선 옮김|다산책방|352쪽|1만4000원

    "나는 오늘 이 고통을 세사르 바예호로 겪는 것이 아닙니다. 예술가로도, 인간으로도, 살아있는 존재로도 겪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단지 고통스러울 뿐입니다…. 예술가가 아니었다 해도 겪었을 것이며, 인간이 아니었다 해도,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해도 이 고통을 겪었을 것입니다…. 오늘은 단지 고통을 겪을 뿐입니다."

    이것은 시이고, 제목은 역설적이게도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저자의 괴로움은 무엇 때문인가. 알 수 없다. 이유 없이 아프고 그저 괴로울 따름이라고 호소하는 시의 저의는 무엇인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끝내 저 비형(非形)의 상처를 들여다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20세기 페루 시인 세사르 바예호(1892~1938)가 남긴 시 122편을 묶었다. 1998년 첫 국내 출간된 시선집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를 다듬고 미번역 시를 추가한 개정증보판이다. 절판돼 발을 구르던 독자의 성원이 이번 책을 탄생시켰다. 번역을 맡은 고혜선 단국대 스페인어과 교수는 "외환 위기 당시 한국 실정에 가장 어울리는 제목이라고 판단했다"고 추억했는데, 이번엔 독자 설문 등을 통해 작금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수록작 제목 중에서 새로 골랐다고 한다.

    시는 대체로 우울하다.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없다./ 항상 산다는 것이 좋았었는데, 늘 그렇게 말해왔는데." 시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없다'는 이렇게 읊조리고 있다. "그리도 많이 살았건만 결코 살지 않았다니!" 그 쓸쓸함은 이유가 없어서 더욱 쓸쓸하다. "오늘 오후 비가 내린다, 이렇게 내린 적은 없었는데/ 그대, 난 정말 살고 싶지가 않다"(배설)같은 문장을 읽다보면, 분명히 지금 창 밖에 비가 내리고 있다.

    '빈민가의 계관시인' 찰스 부코스키(1920~1994)는 "바예호는 예술가로서 쓰지 않는다. 그는 한 인간으로 쓴다"고 평했다. 그는 외로울지언정 허무를 선동하지 않는다. 그냥 죽자고 쉽게 말하지 않는다. 시 '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를 보자. 바예호가 지금껏 호명되고 있는 이유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다.

    "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

    그러나 뜨거운 가슴에 들뜨는 존재.



    손짓을 하자 내게

    온다.

    나는 감동에 겨워 그를 얼싸안는다.

    어쩌겠는가? 그저 감동, 감동에 겨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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