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중산층 가정도 '괴물'을 키울 수 있다

    입력 : 2017.09.07 16:06

    1999년 미국 고등학교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
    10년간 치밀한 취재… "비극이 비극을 재생산"

    책 표지 이미지
    콜럼바인

    데이브 컬런 지음|장호연 옮김|문학동네|680쪽|2만1000원

    1999년 4월 16일 금요일, 미국 콜로라도주 콜럼바인 고등학교는 다음 날 있을 졸업 기념 댄스파티를 앞두고 한껏 들떠 있었다. 교장의 조회가 끝나자 아이들은 복도로 흩어졌고 이제 몇 시간 뒤면 황금 주말이었다…. 그리고 책은 미처 숨돌릴 틈도 없이 주말이 지난 뒤에 이 학교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냉정하게 서술한다. "20일 화요일 오후에는 학생과 교직원 24명이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가게 될 것이다. 13구의 시신은 여전히 교내 건물에 남아 있고, 두 구는 바깥에 쓰러져 있을 것이다. 이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교내 총기사건이 될 것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데이브 컬런(56)은 이 책의 원서를 2009년에 출간했다. 세기말의 끔찍한 대재앙이었던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난 지 10년이나 지난 뒤였다. 학생 두 명이 학교 건물에서 총을 쏘고 폭탄을 던져 사람들을 죽인 뒤 자살한 이 사건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정보는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고 증언과 진술도 중구난방이었다. 끈기를 지닌 채 흩어진 자료들을 종합적이고 다면적으로 분석한 취재와 집필 시간이 10년이었다. 2만5000쪽이 넘는 관련 문서를 읽고 영상·음성 자료를 거듭 검토했으며 현장을 답사하고 중요 인물 한 사람당 수십 차례씩 만나 인터뷰했다.

    이 책은 사건의 실체에 대해 당초 알려진 것과는 상당 부분 다르게 이야기한다. 범인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레볼드는 '외톨이'나 '부적응자'와는 거리가 먼 소년들이었다.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스포츠 활동에도 열심이었으며, 불과 이틀 전 댄스파티에도 짝을 구해 참석했다. 가정환경도 특별히 불우한 구석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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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콜럼바인 총기 난사사건 1주년을 맞은 2000년 4월 20일, 추모객들이 한 희생자의 추모비에 꽃을 꽂고 있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홧김에 저지른 우발적인 행동'이라거나 '평소 미워하던 아이들이나 소수민족을 골라 쐈다'는 얘기도 사실이 아니었다. 그들은 인터넷에서 찾은 '무정부주의자의 요리책'이란 자료를 보고 최소한 일곱 개의 대형 폭탄을 설계했다. "높이 45㎝, 직경 30㎝의 불룩한 흰색 프로판탱크를 골랐다. 이 정도면 고성능 폭발가스를 7.5㎏이나 담을 수 있었다."

    이들은 학교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는 시각과 장소가 '11시 17분 학생식당'이라는 것까지 조사했다. 계획대로라면 학생식당에 설치한 폭탄이 터져 500~600명이 순식간에 희생됐겠지만 폭탄이 불발되자 건물을 돌며 무차별 사격에 나섰다.

    범인은 어떤 아이들이었나? 해리스는 나치를 흠모하고 불특정다수의 인류를 절멸시키려던 사이코패스였으며, 클레볼드는 자살을 결심한 우울증 환자였다. 이들은 사건을 계획한 영상·음성 자료와 영수증까지 꼼꼼하게 남겼다. 평범한 백인 중산층 가정이 괴물을 키워낸 것이다.

    사건 당일 콜럼바인 고교의 CCTV에 잡힌 총을 든 범인들의 모습.
    사건 당일 콜럼바인 고교의 CCTV에 잡힌 총을 든 범인들의 모습. / 위키피디아
    사건이 발발한 직후부터 '어른들'은 계속 허둥댔다. 갓 대중화된 휴대전화를 통해 아직 학교에 남은 학생들의 인터뷰가 방송 전파를 타면서 경찰 작전은 처음부터 꼬였다. 언론은 '범인이 트렌치코트 마피아란 폭력 단체다' '히틀러 생일을 기념해 범행했다'는 등의 보도를 했으나 사실이 아니었다고 이 책은 지적한다. 경찰은 해리스가 뭔가 위험한 일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미리 인지했으나 방관했고, 나중엔 관련 자료를 은폐했다. 법정 싸움이 길어지자 일부에선 '유족들이 돈을 밝힌다'는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는 동안 생존자들은 엄청난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시달렸다.

    100명이 넘는 등장인물의 이야기가 전개되더니 총격 사건이라는 하나의 사건으로 소용돌이처럼 빨려드는 이 책의 서술은 재난영화를 방불케 하면서 탄탄한 '팩트(fact)의 힘'을 보여준다. 범죄란 멀리 떨어진 다른 세계에서 생겨난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 사는 범상한 일상에서 배태된다는 것,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그 비극을 수습하고 극복할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다는 것을 이 책은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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