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山의 '눈높이 교육법'에 주목하라

    입력 : 2017.09.14 15:10

    주춤주춤 초의선사에게 '한순간도 늦추지 말라'
    허세 심한 윤종진에게 '들떠 조급하면 덕을 망쳐'
    한양대 정민 교수, 정약용이 제자에게 준 贈言 59종 한자리에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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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의 제자 교육법

    정민 지음|휴머니스트|316쪽|1만5000원

    경세가(經世家)와 '조선의 다빈치'를 넘어서 이번엔 학습 동기 유발 교수법 전문가로서의 다산(茶山) 정약용이다. '다산의 재발견', '다산선생 지식경영법'등을 쓴 정민 한양대 교수가 다산이 제자들에게 준 증언(贈言) 59종을 한 자리에 모았다. '증언'이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가르침의 목적으로 내려주는 훈계로, 보통 한 단락씩으로 이뤄진 짧은 글 모음이다. 제자의 학습 동기를 고취시키고 공부에 대한 자세를 알려주기 위한 가르침이 다산이 남긴 증언의 주를 이룬다. 조선 후기 교육법이지만 어떻게 아이를 공부하도록 이끌 것인가를 고민하는 현대의 부모들이 귀 기울일 만한 내용도 적지 않다.

    조선시대의 '눈높이 교육'

    다산의 교육법에 매뉴얼은 없다. 제자의 신분과 성향, 자질 및 상황에 따라 그가 명심해야 할 가르침을 정문일침(頂門一鍼) 격으로 내려주었다. 요즘 말로 하자면 '눈높이 교육'인 셈이다.

    '초의선사'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진 초의(艸衣) 의순은 머리는 대단히 총명한데 좀처럼 적극적으로 달려들려 하지 않고 주춤대며 머뭇거렸다. 1813년 10월 19일 다산은 초의에게 이런 증언을 내린다.

    "인간 세상은 몹시도 바쁜데, 너는 늘 동작이 느리고 무겁다. 그래서 일년 내내 서사(書史)의 사이에 있더라도 거둘 보람은 매우 적다. 이제 내가 네게 '논어'를 가르쳐 주겠다. 너는 지금부터 시작하도록 하되, 임금의 엄한 분부를 받들 듯 날을 아껴 급박하게 독책(督責)하도록 해라. 마치 장수는 뒤편에 있고, 깃발은 앞에서 내몰아 황급한 것처럼 해야 한다. 호랑이나 이무기가 핍박하는 듯이 해서 한순간도 감히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초의에게 "공부에 느긋함은 없다"며 재촉하는 성미 급한 스승이었던 다산은 다른 제자 순암(淳菴) 윤종진에겐 꾸준함과 느림의 미덕을 강조했다.

    "독서는 큰 소리로 읽는 것을 가장 꺼린다. 든 것 없이 허세를 부리고 들떠 조급한 것은 덕을 망치는 기틀이다. 차분히 가라앉혀 꼼꼼히 읽어야 기억되어 남는 것이 많아지고, 삼가고 묵직하게 해야 자질이 아름다워진단다."

    윤종진은 열여섯 살에 형들과 함께 글공부를 시작했다. 체격이 왜소한데 마음마저 여렸다. 건성으로 읽어 뜻도 새기지 못하면서 형들에게 안 지려고 자꾸 소리로 기세를 올리려 들었다. 다산은 그의 목소리에서 허세와 조급함을 읽어내 다독인다. 제자의 성정에 따라 방법을 달리하는 자, 곧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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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른쪽 큰 사진은 전남 강진의 다산 정약용 동상. 왼쪽 위는 다산이 윤종진에게 준 ‘독서법증례’, 아래는 초의에게 준 ‘시의순독서법’. / 김영근 기자·휴머니스트 제공

    곤궁한 제자에게 전하는 위로

    조선시대에도 어려운 집안 형편의 청년들은 제 처지를 비관해 갈피 못 잡고 방황하곤 했다. 다산은 그런 제자들이 마음을 다잡도록 인도했다. 그는 증언에서 재물과 권세처럼 사람들이 중시하는 가치가 결국은 환(幻), 즉 허상에 불과하다고 여러 번 말한다. 제자 윤종심에게 써 준 '부환설(富幻說)'이 대표적이다.

    "내가 사람들의 토지 문서를 살피다가 내력을 조사해보니 매년 1백년 이내에 주인이 바뀐 것이 문득 대여섯 번에 이르거나 심한 경우에는 일고여덟 번 또는 아홉 번까지 되었다. 그 성질이 가만히 있지 않고 잘 달아나기가 이와 같았다. 어찌 남에게는 가벼우면서 나에게만 오래 충성하기를 바라, 아무리 쳐도 깨지지 않는 물건이 되리라 믿는단 말인가?"

    땅 문서도 결국 허깨비라는 내용의 이 글을 내린 1813년, 스물한 살 윤종심은 집안의 가장이었다. 곤궁한 처지 때문에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 겉돌았다. 다산이 '부환설'에서 윤종심에게 주문한 마음의 자세는 '안빈낙업(安貧樂業)'. 즉 가난하더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즐겁게 일하는 것이다. 윤종심은 다산의 가르침을 받들어 다시 공부에 매진했다. 글씨 잘 쓰는 그는 이후 다산의 모든 저술을 정리한다.

    다산은 종이나 천을 오리고 그 위에 증언을 직접 써서 제자들에게 서첩으로 꾸며 주는 것을 즐겼다. 제자들은 서첩이 나달나달해지도록 읽고 또 읽어 가르침을 평생 가슴에 새겼다. 그 귀한 가르침이 '다산 증언첩'에 오롯이 담겼다. 전문가를 위해 증언의 사진을 함께 실은 600쪽 분량의 '다산 증언첩'도 함께 출간됐다. 다산 식(式) '눈높이 교육'이 구현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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