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만든 레시피' - 라비올리

  • 한은형 소설가

    입력 : 2017.09.28 15:24

    [한은형의 탐식탐독]

    2010년 여름, 한 남자가 낙찰받은 물건을 들고 소더비 경매장에서 빠져나온다. 그 물건은 요리책과 요리에 관련된 그림. 남자의 이름은 윌리엄 시트웰로, 영국 식품회사 웨이트로스에서 만드는 음식 잡지의 편집장. 웨이트로스사에서 만드는 시리얼(덜 달고 베리와 너트가 듬뿍)을 좋아하는 자로서, 또 이런저런 요리책을 모으는 자로서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이력이다.

    이 남자가 그렇게 모은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요리책에서 백 가지 요리를 뽑아 자신의 방식으로 엮은 책이 '역사를 만든 백가지 레시피'다. 이런 백과전서류의 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점인 지식과 정보만을 병렬식으로 나열한 책이 아니다. 헌신적인 독서가였던, 그리고 음식과 이야기를 깊이 애정하는 게 느껴지는 저자의 개성과 방대한 정보가 체크무늬처럼 교직되는 "지적이고 영특한" 책이다.

    대(大)카토, 베르길리우스부터 브리야 사바랭, 에스코피에, 줄리아 차일드, 나이젤라 로슨 같은 이름난 요리사의 레시피가 실려 있는데,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15세기 어느 추기경의 요리사였던 남자의 '사순절 금식 기간이 아닐 때 먹는 라비올리'다. "사순절 금식 기간이 아닐 때"라는 말 때문이었는데, 일 년에 겨우 40일밖에 안 되는 사순절을 그토록 의식한다는 게 이상했고, 한편으로는 이토록 섬세하니 추기경의 요리사라는 안정된 직장을 얻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순절이 아닐 때 먹는 라비올리는 이렇다. 숙성된 치즈, 지방이 많은 치즈, 기름기가 많은 돼지 복부나 송아지 가슴살, 수탉 가슴살이 필요하다. 성정이 다른 두 가지 치즈에 역시나 성향이 다른 두 가지 육류를 결합시키는 것이다. 이 다르고도 같은 재료들이 어우러지고 충돌하며 어떤 예상밖의 상성(喪性)을 이끌어낼지 침이 솟았다.

    이때까지의 요리책에는 '몇 그램을 넣고 몇 분을 조리한다' 같은 디테일이 등장하지 않았는데 이 분은 정확히 몇 그램, 몇 쪽, 몇 시간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또 귀여우신 게 자기만의 표현법을 쓴다는 것. "주기도문을 두 번 외우는 동안" 이 라비올리를 수프에 넣어 끓이라고 적었다. 주기도문을 두 번 외우는 만큼의 시간이 그에게는 2분이었다고 한다. 또 이런 표현은 어떤가. "돼지 비계를 인정이 느껴지는 양만큼 자른다. (…) 주사위 놀이 하듯 주사위 모양으로 자르면 된다." 인간은 역시 먹고 자고 옷을 입는 것만으로는 충족되지 못하는 존재임을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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