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취] "재미 많이 본 인물로 기억해 달라"

    입력 : 2017.09.29 00:19

    ['플레이보이' 창업자 휴 헤프너]

    27세에 빌린 돈 8000달러로 창간
    '놀 줄 아는 지성인'의 잡지 표방… 메릴린 먼로 표지모델 내세워 성공
    86세 때 60세 연하와 마지막 결혼

    미국의 유명 성인잡지 '플레이보이' 창업자 휴 헤프너(91)가 27일(현지 시각) 별세했다. 플레이보이 엔터프라이즈는 이날 "휴 헤프너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플레이보이 맨션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온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헤프너는 1926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신실한 교사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와 만화 그리기를 좋아했던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2차 세계대전 때 2년간 미국 육군에서 발행하는 미군 신문에서 기자로 복무했다.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심리학과 글쓰기를 전공했고 노스웨스턴대학의 사회학 대학원을 중퇴했다. 남성지 '에스콰이어'에서 카피라이터로도 일했다.

    1999년 5월 칸 영화제에 참석한 헤프너가‘플레이메이트’라 불리는 여성 모델들에게 키스를 받는 모습.
    미국 유명 성인잡지‘플레이보이’창업자 휴 헤프너(가운데 남성)가 27일 세상을 떠났다. 사진은 1999년 5월 칸 영화제에 참석한 헤프너가‘플레이메이트’라 불리는 여성 모델들에게 키스를 받는 모습. /AP 연합뉴스
    보수주의가 미국을 지배하던 1953년 27세였던 헤프너는 부모와 지인들에게 빌린 8000달러로 '플레이보이'를 창간했다. 메릴린 먼로가 표지 모델로 등장한 50센트짜리 창간호는 5만4000부가 팔리면서 큰 성공을 거뒀다. TV 프로그램 '플레이보이의 펜트하우스', 남자들만 출입할 수 있는 '플레이보이 클럽'이 잇따라 생겨나면서 '플레이보이'는 남자들의 욕망과 환상을 대변하게 됐다. '버니'라고 불리는 '플레이보이'의 토끼 모양 로고는 성 해방과 성 상품화를 동시에 상징했다.

    '플레이보이'가 내세운 것은 '놀 줄 아는 지성인'을 위한 잡지였다. 매달 '플레이메이트'라는 여성 모델을 뽑아 그의 대형 컬러 누드 사진을 잡지 가운데 집어넣었다. 누드 사진이지만 노골적이지 않았다. 버트런드 러셀, 장 폴 사르트르, 지미 카터, 마틴 루서 킹과 같은 유명인의 인터뷰와 어니스트 헤밍웨이, 커트 보니것, 존 업다이크, 조이스 캐럴 오츠 등 작가들의 단편소설이 실렸다. 1970년 초반에는 전 세계 발행부수가 700만부에 달했다.

    헤프너는 1949년 오랫동안 사귄 여자친구와 결혼했다가 남매를 낳고 10년 만에 이혼했다. 그 후 헤프너는 '플레이보이 맨션'이란 대저택에서 유명인, 플레이메이트들과 매일 파티를 하며 사는 것으로 이름을 떨쳤다. 실크 파자마를 입고 파이프 담배를 문 채 미녀들에게 둘러싸인 모습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1989년에 플레이보이 모델인 킴벌리 콘래드와 재혼해 두 아들을 뒀고 이혼했다. 2013년 86세의 나이에 플레이보이 모델인 크리스털 해리스와 결혼했다. 당시 해리스는 26세였다.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헤프너는 "한평생 1000명이 넘는 여자와 잤을 것이다"라며 "하지만 결혼 중에는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가진 적이 없다"고 말했다.

    헤프너는 생전 플레이보이 창간호 모델이었던 먼로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한다. 먼로의 열렬한 팬이었던 그는 1992년 로스앤젤레스 웨스트우드 메모리얼 파크 공동묘지에 묻힌 먼로 옆 묏자리를 7500달러에 샀다. 자신의 묘비명도 플레이보이 창간 50주년 기념식 때 미리 써놨다. "성에 대한 유해하고 위선적인 생각을 바꾸는 데 어느 정도 기여를 했고 또 그렇게 하는 동안에 많은 재미를 본 인물로 기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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