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카프카, 여기에 프루스트를 한 스푼 섞으면…

  • 김남주·번역가

    입력 : 2017.10.08 00:48

    이시구로의 소설 다섯 권 옮긴 번역가 김남주가 본 이시구로

    김남주·번역가
    김남주·번역가
    가즈오 이시구로는 누구인가? 그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지금 어떤 의미가 있는가?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한 뒤, 스웨덴 한림원의 사라 다니우스 사무총장은 위트 있게 말한다. "제인 오스틴과 프란츠 카프카를 섞으면 일단 이시구로의 바탕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의 진짜 글맛을 보려면 거기에 마르셀 프루스트를 조금 더한 다음 가볍게 저어줘야 한다."

    시대적 사실성과 심리적 통찰의 대가인 제인 오스틴의 서사가 카프카 문학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꿈같은 현실성'과 만나 이시구로 문학의 바탕을 이룬다는 것이다. 여기에 마르셀 프루스트를 조금 섞어보자. 프루스트는 사실보다 사실의 해석, 사건보다 기억에 천착한다. 한림원이 밝힌 이번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는 영국과 독일과 프랑스 문학, 요컨대 문학 본령에 가닿는 이시구로 문학의 특징을 정확히 짚는다.

    이시구로는 영국으로 이주한 이래 줄곧 영어로 작품 활동을 해온 영국 작가다. 이름과 외모, 일본적인 작품 소재 탓에 종종 일본 작가로 오해받지만 이시구로는 "민족과 언어를 넘어 인간의 보편적 정서에 호소하는 그냥 '세계인'이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첫 소설 '창백한 언덕 풍경'이 발표되자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말해진 것보다 말해지지 않은 것이 종종 더 중요한… 어둡고 신비로운 소설"이라며 놀라운 재능의 출현을 알렸다. 영국 주간 '옵저버'는 "첫 소설이라고 보기 어려운, 최근 발표된 여러 작품 중 가장 돋보이는 소설"이라고 평했다.

    20세기 초 격동의 중국 상하이를 배경으로 추리 기법을 적용해 쓴 '우리가 고아였을 때'(2000)는 고아의 운명을 품은 이들이 세상과 대면하는 방식을 담은, 어쩌면 작가의 가장 사적인 소설이다. 독자는 고아가 된다는 것이 실제 부모를 여의는 사실 여부와 상관없을지 모른다고, 낙원을 잃은 후 인간은 모두 고아일지 모른다는 자각에 이르게 된다. 이후 1989년 부커상 수상작 '남아 있는 나날'로 그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가가 된다.

    복제 인간을 소재로 한 '나를 보내지 마'(2005)는 인간의 의미를 묻는 수작(秀作)으로, 이시구로의 대표작이라 해도 좋은 소설이다. 잔잔한 일상이 누적된 첫 단편집 '녹턴'(2009)은 책장을 덮고 한참 후까지 공명을 일으키고, 최근작 '파묻힌 거인'(2015)은 망각의 안개가 내린 고대 잉글랜드 평원을 무대로 기억을 찾아간다.

    이시구로의 다섯 작품을 우리말로 옮긴 역자로서, 그의 담담하고 정확하며 찬찬한 문장이 품은 향기를 더 많은 이와 품을 수 있게 돼 기쁘다. 큰 바위와 작은 자갈을 시냇물처럼 자연의 속도로 어루만지는 그의 문장은 독자를 편안히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며 '집단과 개인의 과거가 어떻게 현재로 연결되는가' 묻는다. 그의 페르소나들은 분홍빛이라기보다 푸른빛이고 대낮보다 저녁이며 성공보다 안타까운 실패 쪽에 가깝지만, 우리에게 아직 삶을 제대로 세울 시간이 남아 있음을 환기시킨다.

    문학적 진정성이 포진한 이런 미묘한 표현 방식을 지닌 작가가 있다는 것은, 해야 할 말보다 훨씬 많은 말이 넘치는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귀한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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