黑과 白은 폭력… 더 큰 세계는 회색에 있다

  • 구효서·소설가

    입력 : 2017.10.10 03:04

    동인문학상 최종심 4인 확정… 심사위원 評

    2017 동인문학상 최종 후보가 결정됐다. 심사위원회(김화영·김인환·오정희·정과리·구효서·이승우)는 최근 본심 후보 15명 중 4명을 최종심에 올렸다. 강영숙·조해진·김선재·김애란이 그 주인공. 모두 여성 작가이고, 장편보다 단편의 힘이 우세했다. 본심 합류 순서대로 심사위원이 직접 이들의 작품을 평한다. /편집자 주

    후보① 강영숙 '회색문헌'

    강영숙(50)의 소설에는 '경계'가 있다. 그의 최근 소설집 제목 짓기 방식을 따르자면 그 경계는 회색지대다. 흰 쪽도 검은 쪽도 아니면서 흰 쪽이기도 하고 검은 쪽이기도 한 경계. 색깔과 공간의 개념을 아우른 명명이다. 공간을 지면 혹은 소설의 지평으로까지 넓히면 회색지대는 '회색문헌'이 되고, 이것이 그의 최근 소설집 제목이다.

    그가 소설 속에 직접 설명해 놓은 회색문헌의 뜻을 보면 이렇다. '최종 단행본이 되기 이전의 자료, 공식 자료 이전의 자료, 과정을 보여주는 회의 자료, 최종 결과물이 나오면 결국 폐기하게 될 자료.' 이 같은 설명에 기대 자신의 소설을 스스로 회색문헌이라 폄하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아니면 덜 된 작품이라고 겸손해한 것이거나. 소설을 펼쳐보면 아닌 게 아니라 회색문헌적 요소가 다분하다. 에피소드나 사건이 정리돼 있지 않다. 인과의 맥락은 이어지지 않고 자주 끊긴다. 인물이 까닭 없이 출몰한다. 지금인지 과거 이야기인지, 현실인지 비현실인지 분간키 어렵다. 그래서 이른바 가독성이 떨어진다.

    스스로 놀랄 만한 글 쓰고 싶어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우리를 바꿔나가지만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것에 관심이 갑니다.” 소설가 강영숙은 “환경이 인격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작가다. 녹색당원이면서 환경을 소설의 주 소재로 삼는 이유다. 차기작은 올해 말 탈고 예정인 지진에 대한 장편소설. “많이 팔리거나 출판 산업에 기여하는 작가는 아니어도 내가 쓰고 깜짝 놀라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스스로 놀랄 만한 글 쓰고 싶어 -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우리를 바꿔나가지만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것에 관심이 갑니다.” 소설가 강영숙은 “환경이 인격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작가다. 녹색당원이면서 환경을 소설의 주 소재로 삼는 이유다. 차기작은 올해 말 탈고 예정인 지진에 대한 장편소설. “많이 팔리거나 출판 산업에 기여하는 작가는 아니어도 내가 쓰고 깜짝 놀라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김지호 기자

    그럼에도 끝까지 읽힌다. 가독성이 떨어지는데 흥미롭게 끝까지 읽힌다는 게 무엇일까. 다르게 말해보면 이해를 구할 수 있을까. 가독성은 뛰어난데 흥미롭지도 않고, 따라서 끝까지 읽을 수 없는 소설이 있다고. 6년 전, 맨부커상 심사를 앞두고 영국에서는 난데없이 '가독성' 논란이 일었다. 가독성을 심사 기준으로 삼겠다는 심사위원회의 언급이 나온 뒤였다. 그렇다면 그동안 가독성을 심사 기준에 포함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잘 읽힌다는 게 반드시 좋은 작품의 조건이 아니라는 뜻이다. 어째서 잘 읽히는 게 안 좋을 수 있다는 말인가. 소통과 공감은 가독성의 좋은 결과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반성과 이견을 지속적으로 결여하거나 배제할 때 문화적 전체주의로 흐를 위험성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때의 가독성은 저지하고 방어해야 할 대상이 되며, 그리하여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가 또 다른 차원의 가독성으로 등장하게 된다.

    강영숙의 소설은 공감과 소통의 순백에 이르지 못한 회색이 아니라, 순백을 넘어선 회색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순백이라는 경지의 지고한 완성 혹은 완결, 그것에 필연적으로 포함된 지독한 상투의 폭력을 두려워하는 자라면 한 발짝 어두운 그늘로 슬쩍 비켜설 것이다. 차라리 결핍이나 결락을 '택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작품은 16일의 달, 즉 보름의 만월을 하루 넘긴 달 모양이 되지 않을까. 16일은 10(旬) 더하기 6(六). 합자(合字)하면 명(冥)이며 뜻은 어둠이다. 보름달인 만월에서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어둡다니. 그러나 이 어둠을 보는 것이야말로 차오르는 달과 기우는 달의 묘한 경계를 아는 일이며, 기우는 달의 어둠을 굳이 색깔로 말하자면 강영숙이 말하는 회색일 터이다. 암(暗)과는 다른 명(冥).

    빼고 남겨놓고 물러섬으로써 더 큰 완성의 여지를 도모하려는 명(冥)의 경계이며 자신감일망정, 폄하는 물론 겸손도 아니다. 여기에 그의 소설을 흥미롭게 끝까지 읽게 하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분명한 점은 이것이다. 그의 회색문헌들이 외부에서 가져온 미비한 서류가 아니라 문단 경력 20년의 솜씨로 꼼꼼하게 만들어낸, 스스로 택한 꽉 찬 문법의 소설이라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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