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구리 툭 찔러'… 노벨경제학상 받았다

    입력 : 2017.10.10 03:10

    [오늘의 세상]
    작은 행동으로 큰 경제효과 얻는 '넛지' 이론가, 美 세일러 교수

    - 넛지, 팔꿈치로 슬쩍 치듯…
    인간 심리 활용한 행동경제학
    "남들은 세금 다 냈어요" 했더니 처벌 경고 때보다 체납자 줄어
    오바마·캐머런 등에도 조언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세일러 미국 시카고대 교수가 지난 2009년 9월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해 본지와 인터뷰한 뒤 저서 ‘넛지’를 손에 들고 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세일러 미국 시카고대 교수가 지난 2009년 9월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해 본지와 인터뷰한 뒤 저서 ‘넛지’를 손에 들고 있다. /전기병 기자
    인간의 심리가 경제적 선택에 미치는 영향을 체계화시킨 '넛지(nudge)' 이론으로 알려진 리처드 세일러(72) 미국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가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9일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심리학과 경제 행위와의 관계를 분석한 행동경제학의 대가"라며 세일러 교수를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를 밝혔다.

    세일러 교수가 주창한 '넛지'라는 말은 사전적으로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는 뜻이다. 그가 행동경제학 용어로 개념화시킨 넛지는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을 말한다. 인간이 완전히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에 정책 설계자가 옆구리를 누르듯 가볍게 개입하면 개인들이 똑똑한 선택을 하도록 유도할 수 있고, 이것이 경제적 효용을 높일 수 있다고 세일러 교수는 설파했다.

    넛지 이론이 실생활에 적용된 사례는 이렇다. 남자 화장실 소변기 안에 파리 한 마리를 그려 넣었더니 소변기 밖으로 튀어 나가는 소변량이 80%나 줄어들었다. 남성들이 무심코 파리를 발견하고 '집중 조준'하는 바람에 소변이 밖으로 튀어 나가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납세를 유도할 때 '세금을 내지 않으면 처벌을 받게 됩니다'라고 했을 때보다는 '이미 미네소타 주민의 90% 이상이 납세 의무를 이행했습니다'라고 안내문을 보냈을 때 자진 납세 효과가 훨씬 컸다. '남들은 다 세금을 냈다'는 식으로 불안감을 자극해 납세자 집단 속에 묶이고 싶은 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평소 세일러 교수는 "사람들이 이성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했다.

    넛지 이론은 적은 비용으로 큰 정책 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케빈 러드 전 호주 총리 등 국가 지도자들이 관심을 가졌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는 세일러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정책을 상의할 정도였다. 그는 대중적인 글쓰기에 능숙한 경제학자다. 저서 '넛지'는 2009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해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면서 국내에서도 유명세를 탔다. 앞서 2007년 펴낸 '승자의 저주(The Winner's Curse)'라는 책도 인기를 끌었다. 기업 인수·합병(M&A)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 너무 높은 가격을 부른 나머지 승자가 된 직후 몰락하는 과정을 그리는 등 인간이 이성적 선택을 하지 못해 손해를 보는 역설을 풀어냈다.

    세일러 교수는 2015년 미국의 주택시장 거품을 소재로 다룬 영화 '빅쇼트'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이날 노벨상 수상자로 결정된 직후 인터뷰에서 "(노벨위원회가) 내 업적을 소개하면서 할리우드 배우로서 기량을 언급하지 않아 서운했다"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세일러 교수는 1990년대 중반 '풀러&세일러 자산운용'이라는 회사를 스스로 세워 투자자의 심리적 특성을 활용한 투자 기법을 스스로 선보인 적도 있었다.

    1945년 뉴저지주에서 태어난 세일러 교수는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대를 나와 로체스터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8년 코넬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됐고, 1995년부터 시카고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코넬대 유학 시절 세일러 교수 수업을 들었던 조명현 고려대 교수는 "소탈하고 농담을 잘하는 다변가로 기억한다"며 "월가의 금융회사에 취업하고 싶어 하는 제자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친절한 스승"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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