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하지 말고 기억하라… 우리는 人間이다

  • 이승우 소설가·조선대 교수

    입력 : 2017.10.11 03:05 | 수정 : 2017.10.11 08:24

    동인문학상 최종심 후보 심사평② 조해진 '빛의 호위'

    "어떤 멜로디는 계속해서 그 세계에 남아 울려 퍼지고, 간혹 다른 세계로 넘어와 사라진 기억에 숨을 불어넣기도 한다."

    알지 못했던 누군가의 사연에 어떤 연유로 어쩔 수 없이 이끌려 다른 시간과 낯선 공간을 찾아가고, 거기서 숨어 있거나 숨겨져 있던 진실과 마주하는 사람들을 조해진(41)은 소설집 '빛의 호위'에 담았다. 6년 전 내놓은 장편 '로기완을 만났다' 이후 그의 이런 소설적 관심은 꾸준하고, 그 방법은 더 세련돼졌다.

    소설가 조해진
    고립보다 유대, 고통보다는 위로 - “‘빛의 호위’에 수록된 단편 9편은 고립보다 유대, 고통보다 위로를 전하고 싶어 쓴 작품이에요. 이렇게 후보에 올라 이름이 호명되니 더 각별하게 느껴집니다.” 소설가 조해진은 쉼 없이 작품을 발표하고 있고, 최종심에 두 번째로 이름을 올린 동인문학상뿐 아니라 각종 문학상에 늘 강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된다.“ 내가 쓴 어떤 문장이 누군가와 동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늘 가슴 벅차고 또 부끄럽다”는 조씨는 지금도 장편을 집필 중이다. /박상훈 기자
    '기억'과 '책임'은 이 소설집의 키워드다. 기억하는 자만이 책임을 진다고, 책임을 지기 위해선 망각하면 안 된다고 작가는 믿는 것 같고, 나는 동의한다. 망각에 대한 거부는 이 소설집 곳곳에서 발견되는 가장 크고 간절한 목소리다. 소설 속 인물들이 '저기'와 '그때'에서 찾아낸 것이 '기어이 발굴해내야 하는 것'임을 말하기 위해 작가는 비극적 사건에 연루돼 삶이 망가진 개인의 내밀한 사연 속으로 독자를 데리고 들어간다. "생존자는 희생자를 기억해야" 하고 "동의 없이 그들을 이 세계로 밀어내고는 향유할 기억과 움직일 수 있는 자유를 빼앗아간… 그 최초의 분실자"는 용서하면 안 된다. 낮고 느리지만 끈기 있게 설득하는 조해진의 목소리 앞에서 독자는 자주 멈추지 않을 수 없다.

    인간에 대한 인간의 책임에 이 작가는 유난히 간절한데, 이때 인간인 우리가 책임져야 할 '인간'이 가족이나 친구나 동족이 아니라, 예컨대 근접성에 의해 형성된 관계인 형제나 이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거리와는 관계없는 종(種)으로서의 인간이라는 주장은 당연하지만 새롭다. 인간은 가깝기 때문에 가까운 사람에 대해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작가는 생각하는 것 같고, 나는 그 생각을 지지한다.

    조해진이 구축하고 있는 이 독특한 세계는 "셔터를 누를 때 세상의 모든 구석에서 흘러나와 피사체를 감싸주는 빛 무더기"와 같이 마술적이다. 그가 쓴 대부분의 소설이 한국 문학에서 흔히 발견되는 가족 간 애착과 감정싸움에 무관심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또 이것이 그의 소설이 표면적으로 인과적 설득력에 철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인간이라는 종의 유대야말로 가장 설득력 있는 인과관계라는 생각은 엄숙해서 시비하기 어렵다. 세상의 모든 구석에서 빛 무더기가 흘러나와 감싸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까.

    책임은 연민과 달라서 감정에 대한 호소로서가 아니라 인식과 성찰을 통해 얻어진다. 그의 소설이 노리는 것은 공감을 통한 일회적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예컨대 찰나의 동정을 빌미로 한 영원한 망각이 아니라, 깨달음을 통한 항구적이고 윤리적인 성찰이라고 나는 읽는다.

    "이 세상에 너밖에 없는 것처럼 살 수는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거니와 무엇보다 옳지 않다." 독자인 우리가 듣는 목소리는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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