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모습 되살린 '열하일기' 완역 출간

    입력 : 2017.11.08 23:51

    열하일기 초고본인‘연행음청(燕行陰晴)’.
    열하일기 초고본인‘연행음청(燕行陰晴)’.
    "어제 아침에 우연히 명륜당 오른쪽 문 가리개 아래에 있었는데 기려천과 왕삼빈이 팔짱을 끼고 목을 나란히 하여 홰나무 뒤에 서 있더니 한참 뒤에 입을 맞추고 혀를 빨더군요.… 왕삼빈은 수도 없이 음란한 교태를 간드러지게 떨더이다."

    조선 후기의 문호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의 중국 기행문인 '열하일기(熱河日記)' 친필 초고본에는 그가 청나라 황제의 여름 별장이 있는 열하에서 만난 중국 미청년의 동성애에 관한 서술이 나온다. 연암을 수행한 하인의 말을 옮긴 이 부분은 '열하일기' 활자본이나 필사본에는 들어있지 않다.

    최근 출간된 '개정신판 열하일기'(전3권·돌베개)는 삭제·윤색되기 이전 원래 모습의 열하일기를 김혈조 영남대 교수가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2009년 활자본과 필사본을 토대로 열하일기 완역본을 간행한 김 교수는 2010년 열하일기 초고본이 발견되자 이를 검토해 다시 완역본을 내놓았다. 한학자였던 연민(淵民) 이가원(李家源·1917~2000)이 단국대에 기증한 고서 더미 속에 포함돼 있던 열하일기 초고본은 2012년 영인됐다.

    1780년 청나라 건륭제의 고희(古稀) 축하 사절단을 따라간 박지원은 156일간 중국을 돌아보고 귀국한 뒤 '열하일기'를 썼다. 지배층은 열하일기를 불온시했고, 정조(正祖)는 문체반정(文體反正)의 주 대상으로 열하일기를 지목했다. 이 때문에 열하일기는 1901년 활자본으로 처음 간행될 때까지 필사본으로 유통됐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변형이 이뤄졌다.당시 사회적 기준이나 윤리에 맞지 않는 내용은 수정되거나 삭제됐다. 초고본의 청나라 건륭 연호는 삭제됐고 명나라는 '황명(皇明)' '유명(有明)'으로 높여 표현했다. '개정신판 열하일기'는 이런 부분을 초고본대로 살려서 번역했다. 또 '양매시화(楊梅詩話)' '천애결린집(天涯結隣集)' 등 초고본에서 새로 발견된 글을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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