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 상처 보듬는 '영원한 청춘 시인'

    입력 : 2017.11.11 03:01

    어제 광명서 '기형도 문학관' 개관
    어둠·절망 노래했던 시인 기형도, 교과서 실린 '엄마 걱정' 사랑받아

    "기형도 시인의 시 '엄마 걱정'을 제가 노래로 부른 적이 있어요. 처음 시를 읽었을 땐, 엄마가 아니고 왜 아이가 엄마 걱정을 하는가, 의아했습니다. 그 시가 좋아서 노래로 만들었고, 언젠가 기형도 시인의 어머니가 제 공연장에 오셨을 때 서로 껴안고 운 적도 있습니다."

    소리꾼 장사익씨가 10일 경기도 광명시에서 열린 '기형도 문학관' 개관식에서 '엄마 걱정'을 불렀다. '열무 삼십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지 오래/(중략)/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문학관 개관식에서 기형도 시인의 시‘엄마 걱정’을 노래로 부른 소리꾼 장사익씨.
    기형도문학관 개관식에서 기형도 시인의 시‘엄마 걱정’을 노래로 부른 소리꾼 장사익씨. /광명시청
    기형도 시인(1960~1989)은 경기도 연평도에서 태어났지만, 다섯 살 때부터 시흥군(현재 광명시 소하동)에서 자라고 서른 살 생일을 엿새 앞둔 채 뇌졸중으로 요절할 때까지 살았다. 그의 시 '엄마 걱정'은 소하동에 살던 유년 시절을 회상한 작품이다. 어머니가 야채 행상에 나섰던 유년기의 가난에 담긴 슬픔을 맑은 감성의 언어로 노래해 애틋한 감동을 자아냈기에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기형도는 시흥군이 1981년 광명시로 승격하기 전 1970년대 산업화를 대표한 공장 굴뚝과 주변 풍경을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라며 음울하게 묘사한 시 '안개'로 등단했다. 벌판 한가운데에 비닐하우스 형태로 서 있던 허름한 '바람의 집'이 기형도 문학의 산실이었다.

    경기 광명시 오리로에 세워진 기형도문학관.
    경기 광명시 오리로에 세워진 기형도문학관.
    기형도의 첫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은 1989년 출간된 뒤 지금껏 29만부가량 팔리면서 문학 청년들의 필독서로 꼽힌 지 오래됐다. 기형도는 어둠과 절망, 겨울을 주로 노래했기에 젊은 영혼의 상처를 대변한 시인으로 꼽혀왔고, 젊은 독자들이 삶의 '통과제의(通過祭儀)'를 거치듯 그의 시집을 읽어왔다.

    기형도가 '영원한 청춘의 시인'으로 불리자 광명시 문인과 시민들도 기형도 문학을 재조명하는 행사를 2000년대 이후 꾸준히 펼쳐왔다. 마침내 광명시는 2014년부터 기형도 문학관을 추진했고, 기형도 시인이 다닌 연세대 문학회 출신의 평론가 이영준, 소설가 성석제씨 등을 비롯해 평소 가까웠던 문인들과 여러 차례 협의를 거쳤다. 지상 3층 건물로 문을 연 기형도 문학관은 1층 전시 공간 이외엔 시집 전문도서관과 북카페, 문학도를 위한 습작실 등 광명 시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꾸몄다. 유족의 뜻이라고 한다.

    이날 개관식엔 양기대 광명시장을 비롯해 시인의 모친 등 유족과 지역 주민, 문우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연세대 후배인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축사를 통해 "기형도 형은 늘 대학노트에 빽빽이 쓴 시를 제게 보여주곤 했다"라며 "형에게 시를 주로 언제 쓰느냐고 물었더니, '신촌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많이 구상했다'고 했는데, 아마 안양천 주변의 풍경에서 시를 많이 얻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이영준 경희대 교수는 "몇 해 전 광명시에서 기형도 문학제가 열렸을 때, 청중 1000명 중 900명은 중·고생들이었다"라며 "세상의 어둠을 주로 노래한 기형도의 시를 청소년과 대학 신입생들이 좋아한다는 것은 그들의 아픔을 기성 세대가 잘 보듬어주지 못하기 때문에 기형도를 읽으며 스스로 달래는 현상인 듯하다"라고 평했다. 이 교수는 "이 문학관에 오시는 어른들이 잃어버렸지만 가슴 한쪽에 아직 남았을 젊음을 기억하시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기형도 문학관 개관에 앞서 지난 9일 열린 강연회에서 김응교 교수(숙명여대)는 "한 조사에 따르면 근간에 가장 많이 팔린 시집은 1위가 윤동주이고, 2위가 기형도라고 한다"며 "두 시인 모두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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