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회사 직원→기자→소설가로 변신한 장강명 "즐겁다"

  • 뉴시스

    입력 : 2017.11.13 09:28

    소설가 장강명
    ■'소설가의 자화상' 교보 인문학석강
    "노래를 부르고 싶을 때 그 마음을 춤이나 운동으로 승화시키는 사람은 없습니다. 노래를 부르고 싶을 때 그 마음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은 노래 밖에 없습니다.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설가 장강명(42)씨는 지난 9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23층 컨벤션홀에서 '소설가의 자화상'이라는 주제로 열린 교보인문학석강에서 "소설을 쓰고 싶은 욕구를 해소하는 길은 쓰는 것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연세대 도시공학과를 졸업한 뒤 건설회사를 다니다 그만뒀다. 동아일보에 입사해 11년 동안 기자로 일했다. 장씨는 "5년차 기자일 때 소설이 너무 쓰고 싶었다"며 "어느날 그냥 자려니 억울해서 젊은 소설가가 주인공인 소설을 하나 썼더니 보람이 있었다. 소설을 쓰면서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소설을 쓰고 싶은 욕망이 있었는데, 욕구가 해소되니 생활이 즐거워졌다"고 떠올렸다.

    이후 장편소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에 데뷔했다. 장편소설 '열광금지, 에바로드'로 수림문학상, 장편소설 '댓글부대'로 제주 4·3평화문학상과 오늘의작가상,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문학동네작가상, 단편 '알바생 자르기'로 젊은작가상을 받았다.


    소설가의 사전적 정의는 '지속적으로 소설 작품의 저술·발표'하는 직업이다. 일반적으로 소설가는 직업으로 집필한 작품을 통해 수익을 얻고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하지만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는 소설가, 이른바 '겸업 소설가'도 소설가로 불리워진다.

    장씨는 "'소설가'가 뭔지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라며 "소설가 역할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딱히 정답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마치 하늘의 계시를 받은 것처럼 꾸미는 경향이 있는데, 그에 반대한다"며 그럴듯한 허울을 벗어 던지고 생업으로서의 소설가에 대해 말했다.

    먼저 장편소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2011년으로 기억을 되돌렸다.

    '표백'은 이미 모든 것이 완벽하게 존재해 더 이상 세상에 공헌할 길이 막혀 버린 탈색된 젊은이들, '표백'된 세대의 연쇄 자살을 그린 작품이다. 세대 문제를 비롯한 사회의 그늘을 조명했다.

    장씨는 "한국 사회를 비판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소설을 쓰는 마음과는 별개"라고 선을 그었다. "처음에 인터뷰할 때 한국 사회의 어떤 점을 비판하려고 했냐는 질문을 받았다"며 "'소설을 쓰면 내가 의미를 만들어내고, 그 순간에 덜 허무하다'고 답했다"고 회상했다.
    "언제부터 소설가가 되기로 했냐는 질문도 받았는데, 그런 계기가 없었다. 어느 날부터 소설을 써야 겠다는 게 없었다. 그저 책 읽기를 좋아하는 소년이었고, 주변에서 글을 잘 쓴다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었다. 계속 쓰면서 작가적 자의식 같은 게 생겼고 천천히 작가가 됐다."

    그러면서 늦깎이로 데뷔한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도 전했다.

    "대학 총장을 지내거나 기업에서 일한 사람 등이 소설을 발표하기도 한다. 그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문학을 좋아했다. 어릴 때 소설가가 되고 싶었는데, 돈을 벌기 위해 취업하거나 누군가에게 '글이 아니다'는 말을 듣고 접었는데, 소설 쓰고 싶은 마음을 참아왔던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소설쓰게 된 것을 너무 좋아하고 있다."

    그는 소설가가 된 계기는 특별히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랑을 예로 들어 소설가로서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우리가 어떤 이성을 사귀면 연인이 되어야 할까 말까를 고민하고, 막상 연인이 되면 또 그 사람과 결혼할지 말지를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그 시기에 있는 어떤 사람이 금슬이 좋은 부부를 찾아가 '언제 결혼해야 겠다고 결심했냐'고 물어봅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 대답이 별 게 없습니다. '감기에 걸렸는데 간호를 잘 해주더라. 그래서 결혼을 결심했다' 이런 식입니다. 소설가도 그래요. 소설가가 되겠다는 결심은 개별적이고 굉장히 개인적입니다."
    장씨는 소설가 지망생들에게 "소설을 써야 되는지 안 써야 하는지 확신이 없으면 1년간 쓰지 말라"고 조언했다.

    "1년간 소설 생각이 안 나면 쓰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도저히 쓰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날에 소설가로 돌아설 것입니다. 마치 드라마에서 연인과 헤어진 주인공이 공항으로 달려가는 모습과 같은 거죠. 이 사람이 아니면 죽을 것 같아 뛰어가고, 그렇게 만나 다시 사랑을 하게 되는 것처럼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설을 쓰고 싶은 날이 있으면 그 날이 계기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소설가'와 '소설의 저자'를 나누는 명확한 구별 기준은 없다. 이것은 마치 문학에서 등단 작가와 등단하지 않은 작가의 구분이 애매모호하게 된 것과 같다.

    이와 관련해 장씨는 "소설가에 대해 공통된 합의는 없다"며 "200자 원고지 1000매를 어떻게든 쓰면 남이 인정하든 안 하든 거기서부터 소설가라고 해도 좋겠다라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대한민국에서 글을 써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소설가로서의 삶은 녹록지 않다. 2015년 예술인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서 문학인의 연평균 문학 활동 소득은 214만원으로 나타났다.

    장씨는 스타 작가가 아닌 이상, 현실적으로 소설가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그는 "100명 중 90명은 어려운게 맞다"며 "하지만 써야 하는 사람이고 써야 한다면 좀 더 밝은 이야기도 하고 싶다"고 말문을 열었다.

    "한국이 소설가를 사회 지도층인사, 지혜로운 사람으로 우대하는 것 같습니다. 강연과 기고가 많아요. 인세 수입보다 강연 수입이 많은 게 일반적입니다. 한국 소설이 어렵다는 것을 다 알고 있어서 발상의 전환이라고나 할까요. 다 도와주려고 합니다. 신문에 보시면 소설가 인터뷰 기사에 안 좋은 이야기가 나온 것을 보신 적이 있냐요? 누가 신간을 내면 다 좋은 이야기를 해주려고 합니다. 한국 문학은 문화 콘텐츠 원천으로 다른 나라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다만 장씨는 "한국 소설가의 밝은 면을 말한 것으로, 이걸 믿고 당장 전업 작가를 생각하면 안된다"며 "하지만 최소한 공포에 압도돼 꿈을 버릴 필요는 없다. 만약 소설가가 된다면 목표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작가 지망생들에게 당부했다.

    그는 자신의 목표는 걸작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

    "소설 쓰는 사람 모두가 걸작을 쓰고 싶어하고, 저도 걸작을 쓰고 싶습니다. 범죄소설을 내년에 한 번 내보고 싶구요. 공포소설, 역사소설도 내서 소설가로서의 근육을 키워 걸작으로 가보려고 합니다. 이와 별도로 단편집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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