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챙이 로봇'이 진화의 비밀을 밝혔다고?

    입력 : 2017.11.30 15:40

    美 해양생물학자 연구팀 등뼈 더 뻣뻣한 물고기가
    먹이 먹기·포식자 회피 더 유리하다는 가설 검증

    척추 없는 古代물고기 닮은 올챙이 로봇 경쟁시켜
    승률·척추발생 관계 탐구

    '올챙이 로봇'이 진화의 비밀을 밝혔다고?
    다윈의 물고기 | 존 롱 지음|노승영 옮김 | 플루토|368쪽|1만7000원

    "차라리 '물고기 조상님'을 만들자! '로봇 물고기'를 만들자! 이들을 초기 지구의 바다와 비슷한 곳에 풀어놓고 '진화'를 시키자!"

    2003년 미국 배서(Vassar)대학 생물학·인지과학 교수 존 롱의 머리에 이런 생각이 스친다. 해양생물학자인 그의 연구 주제는 물고기의 진화. 그중에서도 특히 몸통 가운데가 뼈 없이 아교질 막대기로 돼 있던 '척삭(脊索)동물'이 왜 뼈와 연골 기둥으로 구성된 척주(脊柱)를 갖춘 '척추동물'로 진화했는지가 특히 궁금했다. 5억3000만년 전 생겨난 최초의 척추동물은 오래전 멸종한 척삭동물에서 생겨났다. 틀림없이 척삭동물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고, 척추동물이 되어 척추골을 가짐으로써 이를 해결했을 것이다. 어떤 문제였을까?

    그가 일단 내린 가설은 물고기가 더 빨리 헤엄치려면 등뼈가 더 뻣뻣해져야 한다는 것. 물고기 등뼈는 일종의 용수철 같은 역할을 하는데 등뼈가 뻣뻣하면 용수철의 크기가 커져서 꼬리를 흔드는 데 쓰는 에너지를 더 많이 저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빨리 헤엄치는 물고기는 더 많이, 더 빠르게 먹이를 먹을 수 있으므로 생존해서 짝짓기하고 후손을 남길 확률도 더 높다. 즉 다윈의 '자연선택설'에 따르자면 빨리 움직이도록 진화한 물고기가 살아남을 확률이 높은 것이다. 이 가설이 검증된다면 인류의 진화 과정을 밝히는 데도 중요한 실마리가 되는데, 인간 역시 척추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접 잠수해 물고기를 지켜봐도, 생선 가게서 물고기를 구해와 해부해도 성과가 없었다. 멸종한 척삭동물 어류를 지금의 바닷속에서 찾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진화봇', 즉 진화하는 물고기 로봇을 만드는 것이었다. 여기서 '로봇'이란 스스로 움직이면서 몸으로 배워 진화하도록 프로그래밍된 컴퓨터를 뜻한다.

    '올챙이 로봇'이 진화의 비밀을 밝혔다고?
    올챙이 로봇 태드로는 진화라는 ‘생명 경기’에서 포식자(맨 오른쪽 아래)를 피해 먹이(빛)를 빨리 감지하고 찾아갈수록 더 높은 점수를 얻도록 설계됐다. / 김성규 기자

    저자가 꾸린 연구팀이 진화봇 설계의 모델로 선택한 것은 멍게의 올챙이. 척추동물과 가장 가깝게 묶인 척삭동물 집단이 피낭동물(被囊動物)이라는 당시의 최신 연구 결과가 저자 연구의 바탕이 됐다. 피낭동물이란 척삭동물의 한 부류로 멍게나 미더덕처럼 가죽 주머니 형태를 하고 있다. 그리하여 탄생한 올챙이 모양 '진화봇'의 이름은 '태드로(Tadro)'. '올챙이(tadpole)'와 '로봇(robot)'의 합성어다.

    연구팀은 최초의 척추동물이 살았던 고대의 바다를 재현한 지름 2.5m짜리 수조에 태양 대신 100와트짜리 조명을 설치하고 척추골의 대용물로 꼬리가 더 딱딱하게 진화되도록 제작된 길이 25㎝짜리 태드로 세 마리를 풀어놓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로봇 물고기들이 태양을 향해 가는 '생명 경기'를 펼치도록 했다. 수중 세계에서 태양은 먹이를 상징한다. 거의 모든 생물에게 최초의 먹이는 식물이 빛에너지를 잡아들여 만든 포도당이다. 바다에서는 대부분의 생물이 먹이를 찾으려고 빛을 따라 움직인다. 진화 과정에는 특별히 개발한 컴퓨터 프로그램이 큰 역할을 했다. 먹이 감지 능력과 접근 속도를 기준으로 한 섭이(攝餌) 경쟁에서 이긴 로봇에게 점수를 더 주고 그 로봇의 (프로그래밍된) 유전자를 이후 세대에 넘겨주는 프로그램이다. 반면 경쟁에서 진 로봇은 다음 세대에 아무것도 넘겨줄 수 없었다. 4년간에 걸친 실험 결과 태드로는 진화했다! 열 세대에 거쳐 120회의 경기를 벌였더니 이긴 로봇의 꼬리 경직도가 높아졌다. 그러나 3세대 이후에선 로봇 행동과 꼬리 경직도 관계가 일치하지 않았다.

    고민에 빠진 연구팀은 실험에 먹이 외에 다른 요인을 추가한다. 바로 포식자(捕食者)다. 연구팀은 진화하는 피식자 로봇과 진화하지 않는 포식자 로봇을 함께 넣어 섭이 능력 향상과 포식자 회피에 대한 선택이 척추골 개수를 증가시킬 거라는 가설을 검증했다. 이번엔 피식자 태드로에 진짜 척추골이 있는 몸통 뼈대도 만들어 줬다. 결과는 매혹적이었다. 처음에 평균 4.5개였던 피식자 개체군의 척추골 개수는 3세대에 이르러 평균 5.5개로 빠르게 진화한다. 그리하여 연구팀은 척삭동물이 척추동물로 진화한 이유가 등뼈를 뻣뻣하게 해 유영 속도를 높임으로써 더 많은 먹이를 먹고, 포식자로부터 도망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가설 검증에 성공한다.

    물리학 법칙과 생물학 이론, 각종 그래프가 등장하므로 문과생이 이해하기엔 만만치 않은 책. 첫 장을 넘겼을 땐 감탄사와 비속어를 남발하는 저자의 언변에 넘어가 '과알못(과학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읽기 쉬울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그렇지만 호기심을 갖고 목표를 설정하며 그를 파헤치는 괴짜들의 열정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지금까지 인류가 이룬 과학적 성과는 결국 이런 사람들에게 빚지고 있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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