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불꽃인가… 미완의 돈키호테인가

    입력 : 2017.11.30 16:13

    체 게바라 평전
    체 게바라 평전 | 장 코르미에 지음 | 김미선 옮김|실천문학사 | 715쪽|1만8000원

    지난달 50주기(周忌)를 맞은 체 게바라는 여전히 현역이다. 마흔도 되기 전 숨진 체의 인기는 변함없다. "영웅으로 죽거나, 오래 살아남아서 악당이 되거나." 영화 '다크나이트'(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속 대사는 마치 공산주의 혁명가들을 겨냥한 것처럼 보인다. 75세에 사망한 스탈린, 83세에 사망한 마오쩌둥, 90세로 숨진 피델 카스트로에 대한 평가는 자국에서조차 엇갈린다.

    반면 아르헨티나 출신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1928~1967)는 서른아홉 살에 볼리비아 정부군에게 사로잡혀 사살됐다. 21세기까지도 여러 나라 시위대는 체 게바라라는 상징을 꺼내든다. 2011년 월가(街) 점령 운동 당시의 미국, 한때 아시아 자본주의의 상징이었던 홍콩의 2014년 우산혁명 때도 체 게바라의 초상을 담은 티셔츠가 인기였다. 그의 초상은 보드카 병(그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에서, 여성 속옷에서도 활약했다.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게릴라는 자본주의 패션 아이콘이기도 하다.

    체 게바라

    숱한 관련 도서가 나왔지만, 구관이 명관. 1997년 프랑스 저널리스트 장 코르미에가 썼고 국내에는 2000년 번역된 '체 게바라 평전'이 여전히 가장 인기다. 평전은 삼국지연의처럼 읽힌다. 시작할 때의 82명 동지는 17명으로 줄어들었지만 혁명은 2년 만에 성공한다. 유비의 고단했던 입촉(入蜀)을 절로 떠오르게 한다.

    쿠바에서의 성공을 뒤로하고 체는 부모와 카스트로에게 편지를 보낸다. "다시 한 번 나의 로시난테에게 박차를 가해야 할 때가 온 것을 느낀다"면서. 스스로를 돈키호테에 비유하면서 체 게바라는 남아메리카 볼리비아로 떠났다. 출사표를 던지며 한나라를 재건하겠다고 나섰던 제갈량처럼. 무장투쟁을 통해 남아메리카 등 주변부 국가들에 혁명정부를 세우고, 그 기세를 몰아 미국에서도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킨다는 것이 체 게바라의 꿈이었다.

    그는 현실을 몰랐거나, 보려고 하지 않았다. 농지개혁이 이뤄진 볼리비아 농민들은 쿠바와 달리 게릴라에 적대적이었다. 외지인인 그가 주도적으로 게릴라전을 수행하기도 어려웠다. 체의 혁명 전략은 비상식적이었다. 핵(核)보유국 소련도 거부했던 미국과의 전면 대결을 주장했다. 패배는 필연적이었다. 그럼에도 체는 의대생 시절 오토바이를 타고 라틴아메리카를 여행하며 목격했던 민중의 삶을 상기하며 자신을 채찍질했다. "저는 예수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저는 힘이 닿는 데까지 모든 무기를 동원하여 싸울 겁니다."

    다시 '다크나이트'의 대사로 돌아가자. 그는 오래 살아서 악당이 되기 전에 죽었다. 순수함으로, 약자에 대한 연민으로 그를 기억하는 이유다. 역사에 남을 '언더독(underdog·약팀)'이었으니, 반하지 않기가 더 힘들지 않았을까. 물론 살아남은 악당들이 그를 자본주의 패션의 아이콘으로 소비하는 아이러니와는 별도로.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