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그믐 밤의 튀김소바

  • 한은형 소설가

    입력 : 2017.11.30 16:34

    [한은형의 탐식탐독]

    [한은형의 탐식탐독]
    텔레비전도 없고, 드라마도 보지 않는다. 그런 내게 종종 보는 유튜브 프로그램이 생겼으니, 요리 프로그램이다. 어쩌다 보게 됐는데 유튜브 제작자의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모데라토의 속도, 칸타빌레의 말투, 적확한 어휘, 악센트를 주는 방식, 머뭇거림을 나타내는 추임새… 다 좋았다. 시종일관 부드럽게 말하다 자기가 보통 깐깐하고 괴팍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분이 드러낼 때가 있는데 난 그때마다 웃음이 터지는 것이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내가 그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다. 인간적인 매력!

    요시나가 후미의 '어제 뭐 먹었어?'도 그런 만화다. 에피소드를 타고 음식들의 조리법이 이어진다. 그런데 인간들이 그렇게 매력적일 수 없다. 일단 주인공인 카케이 시로부터. '삼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미남 미혼 변호사' '찔러도 바늘 하나 안 들어갈 것 같은 인상'으로 보이지만 알고 보면 오십이 넘었고, 미모는 스스로 해 먹는 채소 위주 저칼로리 식단으로 철저히 관리한 결과며, 사실혼 관계인 남자가 있다. 그러니까 게이. 커밍아웃하지 않은 게이다. 그의 파트너는 미용사인 다정한 켄지. 커밍아웃했다. 켄지는 시로의 손을 잡고 다른 연인들처럼 외출하고 싶은데,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시로는 외출을 꺼린다. 이게 갈등의 기본 축이다. 회차가 넘어가며 이 커플이 카페와 온천에, 벚꽃놀이 가는 걸 보는 소회가 각별하다.

    국내에 12권까지 나와 있는데 나는 9권까지 갖고 있다. 응용할 만한 간편 요리가 많아서 인덱스를 촘촘히 붙여놓지만 따라 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또 '먹을 만한 게 뭐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 이 책을 집어 들고, 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는 4권에 나오는 튀김국수에 빠졌다. 시로가 '연말 하면 섣달그믐날 밤에 먹는 국수지'라고 했기 때문에. '우리의 동지팥죽처럼 일본의 섣달그믐 밤에는 튀김국수를 먹나?' 싶었던 것이고.

    그랬다. 일본의 섣달그믐(12월 31일)을 오미소카(大晦日)라 하는데, 이날 밤 메밀국수를 먹는 게 풍습이다. 튀김을 얹어. 도시코시소바. 일명 '해 넘기기 국수'라고. 연말의 시로는 그래서 튀김을 한다. 시로가 전화로 모친에게 '튀김은 어떻게?'라고 묻자 모친은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거란다!'라고 한다. 이 '마음 가는 대로'를 시로는 '의외로 여유 있게'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봐~ 역시 맛있잖아"라는 켄지의 환호. 마음 가는 대로 하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편인 내게 잠시나마 위안이 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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