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文이라 못 읽었던 우리 名文章, 한글로 보세요

    입력 : 2017.12.04 03:01

    한문학자 이종묵·정민·안대회
    삼국시대 원효부터 정인보까지 산문 613편 엮은 '한국산문선' 내

    "우리 동방의 문장은 한(漢)과 당(唐)의 문장도 아니고 송(宋)과 원(元)의 문장도 아니며 바로 우리나라의 문장이다."

    서거정은 삼국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의 시와 글 4302편을 모은 '동문선(東文選)'을 편찬하며 1478년(성종 9년) 서문에 이렇게 썼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우리나라의 문장'과 단절됐다. 한문의 벽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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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대회 교수는“서양 고전은 품격 있고, 읽어보지도 않은 한국 고전은 지질하다고 생각하는데 한번 보면 생각이 바뀔 것”이라고 했다. 왼쪽부터‘한국 산문선’을 펴낸 이종묵, 정민, 안대회 교수. /이진한 기자
    '한국 산문선'(민음사)은 이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우리의 좋은 글을 한글로 쉽게 읽게 하겠다는 취지다. 삼국시대 원효부터 20세기 정인보까지 229인의 산문 613편을 책 9권으로 나눠 엮었다. 200자 원고지 1만8000장 분량. 중견 고전문학자 안대회(56) 성균관대 교수, 이종묵(56) 서울대 교수, 정민(56) 한양대 교수를 주축으로 총 6명이 8년을 꼬박 매달렸다. 책의 주역 안대회, 이종묵, 정민 교수를 지난 1일 만났다. 세 사람은 "보석이 가시덤불 속에 묻혀 있는데, 한문으로 쓰였다는 이유로 거들떠보지도 못하는 상황을 바꾸고 싶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종묵 교수가 맡은 1~3권은 신라부터 16세기까지 자유분방한 산문을, 정민 교수가 맡은 4~6권은 성리학적 질서가 본격화되는 선조 때부터 영조 중반 때까지의 치밀한 문장과 사유의 힘을 보여 주는 글들을, 안대회 교수가 맡은 7~9권은 영조 후반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파격적이고 다채로운 소재와 문체의 글들을 가려 싣고 해설했다.

    조선은 문장의 나라. 책에는 '글쓰기 법'에 대한 글도 수십 편에 달한다. 정민 교수는 "조선은 글쓰기의 전통이 유장하고 근사하다. 그런데 지금 세대는 서양의 명문만 찾는다"고 했다. 허균이 쓴 문장에 관한 글 '문설(文說)'은 글짓기 기교를 넘어선 통찰력이 엿보이는 좋은 교본이라고 했다. 안대회 교수는 "한문으로 썼지만, 한반도에서 한국인의 문제의식을 담고 있기 때문에 '사기' 같은 중국 글에 뒤처지지 않는다"고 했다. "신숙주, 신흠, 정약용이 글에 담은 일본에 대한 관점은 지금 안보에 대한 문제의식도 갖게 합니다. 청나라가 침략할 것이다, 일본이 침략할 것이다 갑론을박했던 조선 후기 글은 국제질서 속에서 우리를 어떻게 지켜야 하느냐는 당대의 문제의식이고, 이는 지금 우리의 문제와도 연결됩니다."

    선조들이 일상생활에서 얻었던 단상을 풀어낸 글은 놀라운 발견. 이제신의 '철쭉을 통한 공부'는 서리를 맞아 더 오래 꽃을 피웠던 왜철쭉에 대한 이야기다. 니체의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한다"는 말과 통한다. 낚시법은 배울 수 있지만, 물고기를 잘 낚는 요령은 배울 수 없다는 내용의 '낚시에서 도를 깨닫다(남구만)'는 말콤 글래드웰이 말했던 '1만 시간의 법칙'을 떠올리게 한다. 꽃 한송이, 낚시질 같은 일상에서 세상의 이치를 읽고자 했던 선조들의 시선이다. 박지원이 큰누이를 떠나보내고 쓴 글, 정인보가 스물한 살에 세상을 떠난 아내를 추모하는 글들은 인간미를 더한다.

    '한국 산문선' 작업은 이종묵 교수가 2010년 안대회, 정민 교수와 의기투합하면서 시작됐다. 세 사람은 2000년대 초반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현장을 찾으러 함께 중국 만리장성을 찾았을 정도로 친밀한 사이. 이종묵 교수가 민음사를 찾아가 "세계명작으로 돈 많이 벌었으니 우리 명작도 돌아보자"고 하면서 본격화됐다. 이들은 "고전(古典)을 (공부)하면 고전(苦戰)을 면치 못한다는 말은 틀렸고, 고전(古典)을 모르면 고전(苦戰)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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