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陸史의 詩는 식민지 변화시키려는 혁명문학"

    입력 : 2017.12.05 00:57

    '다시 읽는 이육사' 낸 도진순 교수

    이육사 대표 詩 새롭게 해석
    "시대적 배경 알아야 이해 가능… 詩經·杜詩 등 동양고전 녹아 있어"

    "이육사의 시는 식민지 조국의 '피의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사무친 진정성에서 나온 혁명문학이다. 그의 시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작품이 쓰인 시대적 상황과 배경을 알아야 한다. 또 한시(漢詩)와 전통에 깊이 뿌리내린 그의 시에는 '시경(詩經)' '주역(周易)' '두시(杜詩)' 등 동양 고전이 녹아 있다."

    중진 한국근현대사 연구자인 도진순(59) 창원대 교수가 이육사(1904~1944)의 주요 시 작품을 해설한 '강철로 된 무지개: 다시 읽는 이육사'(창비)를 펴냈다. 지난해 초부터 발표한 관련 논문을 한데 모으고 총론을 앞에 붙인 이 책은 '청포도' '광야' '절정' 등 육사의 대표작과 '나의 뮤-즈' '꽃', 한시 '만등동산(晩登東山)' '주난흥여(酒暖興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담고 있다.

    도진순 교수
    도진순 교수는“이번 책 부록으로 실은 작가 연보와 작품 연보를 토대로 이육사 평전을 쓸 예정”이라고 말했다. /남강호 기자
    한국현대정치사를 전공하면서 '백범일지' 정본화 작업 등에 힘써 온 도진순 교수가 이육사의 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5년 여름이었다. 독립운동가들의 내면세계를 살펴보던 그는 이육사의 시에 대한 그동안의 해석이 어색하고 역사적 사실에 맞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단적인 예가 시 '청포도'의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라는 구절이다.

    "청포를 '벼슬아치가 입던 푸른 도포'라는 사전적 의미로 해석하고 시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석해 왔다. 하지만 중국 한시에서 청포는 비천한 사람이 입는 옷이고 중국에 망명한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입었다."

    도 교수는 시의 제목 '청포도(靑葡萄)'는 품종으로서의 '청'포도가 아니라 익기 전의 '풋'포도이며 무르익지 않은 우리 민족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중국 강희자전(康熙字典)의 접두어 '청(靑)'은 우리말 '풋'에 해당한다. 또 그가 기다리던 '손님'은 가장 가까운 혁명 동지였던 윤세주(1901~1942)라고 봤다. 이육사는 함께 의열단에서 활동했던 윤세주를 애틋하게 그렸다.

    1943년 봄, 베이징으로 떠나기 직전의 이육사(오른쪽 사진).
    1943년 봄, 베이징으로 떠나기 직전의 이육사(오른쪽 사진). 왼쪽 사진은 중국 작가 루쉰이 세상을 떠났을 때 이육사가 1936년 10월 조선일보에 5회 연재했던 추도문의 제1회분.
    퇴계 이황의 14대손(孫)으로 조선일보 대구지국 기자로 활동했던 이육사는 식민지 상황을 고민하다가 의열 투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다시 문필 활동으로 선회했고 시사평론가를 거쳐 '부끄럽지 않은 시 한 편'을 남기는 쪽을 선택했다. 따라서 이육사에게 시작(詩作)은 그가 가장 좋아했던 루쉰과 마찬가지로 '행동'이나 다름없었다.

    "이육사가 순국한 지 70년이 지났지만 그의 시가 물구나무서 있는 듯해 불편했다"는 도진순 교수는 그의 다른 주요 작품에 대한 재해석도 시도했다. 시 '절정(絶頂)'의 마지막 구절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에서 '강철 무지개'는 '죽음 앞에서 초연한 비극적 황홀'로 해석해 왔다. 하지만 도 교수는 '사기(史記)'에 흰 무지개가 해를 침범하는 것이 군주 암살의 상징으로 나오는 점을 들어 '강철 무지개'가 칼의 기세로 일제를 찌르는 것을 상징한다고 해석했다. 시 '광야(曠野)'에서 '광야'는 보통 '넓은 평야'로 이해해서 만주나 랴오둥 지방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도 교수는 녹야(綠野·푸른 들판)였던 고향이 식민지가 된 후 '척박한 땅'으로 변한 것을 가리킨다고 해석했다.

    도진순 교수의 이육사 시 재해석은 "신선하다"는 평가와 아울러 "여러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문학작품을 좁은 틀에 가둔다"는 반응도 나왔다. 도 교수는 "구체적 사실을 밝히는 기본 연구가 진행된 뒤라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진다"며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해석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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