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화가 220명 한곳에… '청년 정양모' 50년 꿈 이루다

    입력 : 2017.12.05 03:02

    '조선시대화가총람' 엮은 정양모… 연대순 수록해 화풍 알 수 있어

    畵歷·서명… 화가 알리는 원자료… 컬러 도판 1000여 장과 함께 실어
    "많이 봐야 고미술 매력 알게 돼"

    "최순우 선생이 보셨으면 무척 좋아하셨을 텐데요. 죽기 전에 내가 이 책을 엮게 되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위당 정인보의 아들로 국립중앙박물관장과 문화재위원장을 지낸 정양모(83) 선생 얼굴에 요즘 웃음꽃이 피었다. 청년 학예관 시절 품었던 50년 꿈을 마침내 이뤘다. 6일 세상에 나오는 '조선시대 화가 총람'(시공사). 전통 회화를 꽃피웠던 조선시대 화가 220명의 자취를 담은 대사전이다. 약력은 물론 화력(畵歷), 서명, 인장 등 화가를 알리는 원자료들을 컬러 도판 1000여 장과 함께 실었다.

    지난달 30일 서울 사직동 한국미술발전연구소에서 만난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가제본 된‘조선시대 화가 총람’을 들어 보이며 활짝 웃었다.
    지난달 30일 서울 사직동 한국미술발전연구소에서 만난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가제본 된‘조선시대 화가 총람’을 들어 보이며 활짝 웃었다. 그는 100개가 넘는 현재(玄齋) 심사정의 서명을 보여주며“작품의 진위를 가리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1928년 위창 오세창이 편찬한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이 있으나 그림 도판이 없는 사전이었고, 6년 전 문화재청이 펴낸 '한국역대서화가 사전'은 수천 쪽 분량의 방대한 규모이나 작가당 실린 작품이 흑백 사진 두세 장밖에 안 돼 아쉬움을 남겼다. "책 만드는 데 큰 도움 준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가 '컬러 사진 실은 게 어디냐'며 좋아하대요. 책이 나오면 머리맡에 두고 자겠다고 하더군요."

    1962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관으로 들어가 당시 미술과장이던 혜곡 최순우 선생 밑에서 일하면서 품은 꿈이었다. "전시를 해야 하는데 최 선생은 작품이 놓일 위치만 대강 지정하시고 전시 내용엔 일절 관여를 안 하셨어요. 공부를 하지 않을 도리가 없지요. 한데 위창의 책밖에는 찾아볼 자료가 없어요. 한 20년 전시하면서 수장고 모든 작품을 섭렵하긴 했어도 이걸 하나하나 사진과 글로 기록한 책을 만들어 후학에 남기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거지요."

    '조선시대 화가 총람'은 고려 말 문인화가인 이제현을 시작으로 조선 초 안견·강희맹으로부터 20세기에 활약한 김기창·이유태에 이르기까지 220명 화가를 망라했다. 작가를 가나다순이 아니라 연대순으로 소개한 것이 특징이다. "그래야 고려에서 조선, 조선 초에서 중기, 후기로 이어지는 작가들의 화풍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볼 수 있으니까요."

    작가마다 많게는 16장까지 실린 컬러 도판도 놀랍지만 미술사 연구자들은 정 박사가 일일이 수집해 소개한 화가들의 서명과 인장에 혀를 내두른다. "심사정만 해도 서명만 100개가 넘어요. 김홍도의 호(號)도 단원(檀園)을 비롯해 단구(丹邱), 단로(檀老), 농사옹(農社翁) 등 여러 가지를 사용했죠. 앞으로 진위(眞僞)를 가리는 데 이 책이 좋은 자료가 될 거예요."

    박물관장까지 지낸 고미술계 대가이나 책을 내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제작비만 많이 들지 돈은 안 되는 책이라고 출판사들마다 고개를 저었다. 3년 전 시공사와 어렵사리 계약할 때, 2018년에 출간하겠다는 출판사를 '협박'해 1년을 앞당겼다. "그 안에 내가 죽으면 어떡하냔 말이죠. 책에 넣을 그림 가지고도 싸웠어요. 출판사가 작가 1명당 5장 이상 못 싣는다기에 그러면 '책 낼 필요 없다' 우겨서 단원이나 겸재는 16점까지 실었답니다." 더없이 고마운 건 호암미술관과 간송미술관이다. "호암은 300여 점 원판을 통째로 내주었고, 문턱 높은 간송도 100여 점 도판을 사용하도록 허락해주었지요. 전형필 선생과 이병철 회장이 우리 미술 위해 참 큰일 하셨구나 절감했습니다."

    정양모는 220명 화가 중에서도 겸재와 단원이 단연 최고라고 했다. "단원이 52세에 그린 '병진년화첩'은 아주 절필이에요. 말년에 그린 '추성부도(秋聲賦圖)'도 눈여겨보세요. 바람 불고 낙엽 지는 곳에 홀로 선 노인의 모습이 그렇게 쓸쓸할 수가 없어요. 문인화가 이인상의 그림도 좋아요. 강세황처럼 많이 그리진 않았으나 아주 격조 높은 그림만 남겼지요." 젊은이들에겐 고루하다 여겨지는 고미술 감상법을 묻자 노학자가 빙그레 웃었다. "많이 봐야 해요. 많이 보면 저절로 좋아져요. 우리 자연도 즐기세요. 작지만 정겨운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을 깨치면 우리 그림에 대한 안목도 덩달아 높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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