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시절 지나고 나니… 詩가 소박해졌다

    입력 : 2017.12.06 02:29

    등단 30년 맞은 장석남 시인
    불교 색채 짙은 5년 만의 시집… 언어의 본질 고민한 '古代 연작'

    "꺾이는 나이가 됐다." 올해 등단 30주년을 맞은 장석남(52) 시인은 말했다. "좀 더 멀리 보게 됐다." 그리고 5년 만의 시집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를 냈다.

    제목 자체가 변곡을 의미한다. "꽃을 밟는다는 건 일종의 축복의 형태이면서, 동시에 꽃시절이 갔다는 비극이다." '꽃 밟을 일을 근심한다/ 발이 땅에 닿아야만 하니까.'(입춘 부근) 40대에 쓴 시집이 '뺨에 서쪽을 빛내다'였다. "노을 젖은 뺨을 의미한다. 나이듦을 의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이승과 그 너머의 여정을 생각하게 됐다. 과거 소년과 청년기의 상처를 반복해 드러냈다면 이제는 좀 더 근원에 대해 묻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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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석남 시인은 곧잘 ‘신(新)서정파’로 분류된다. “데뷔 당시는 한창 민중시가 득세하던 시절이라 서정시가 조금 사치스럽게 여겨지던 때였다. 어느 시류에 줄 서는 게 싫었고 정치적인 메시지보다 언어의 본질에 더 매달렸다.” /이진한 기자

    시선은 고대(古代)에 닿았다. "내세(來世)의 이야기를 슬어놓은듯/ 흰 그릇에 그득하니 물 떠놓고/ 떠나온 그곳'(고대에서)을 들여다봤고, 6편의 고대 연작을 썼다. "고대는 시간의 이름이면서 분할 이전의 세계다. 우리 삶 속의 고대성은 무엇인가. 먹고 우는 일처럼 원초적인, 불교적으로 얘기하면 무(無)는 아니지만 조화를 상징하는 틈이 벌어지지 않는 언어다. 아주 단순하면서도 의미가 탈락하지 않은 언어다." 그러니 이번 고대 연작은 '배를 밀며' '배를 매며' '마당에 배를 매다'로 대표되는 배 연작의 연장선에 있다. "배를 밀어 어디론가 떠났고, 그 여정이 근원을 향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그는 이제 거의 고대인이 됐다"고 썼다.

    이 고대인의 시 전반에 불교 색채가 짙다. 시인은 1997년 영화 '성철' 주인공으로 캐스팅돼 머리를 박박 밀고 성철 스님(1912~1993)을 연기한 적이 있다. "영화는 IMF 여파로 개봉이 무산됐지만, 범접할 수 없는 지혜로 뭉친 흔들림 없는 세계가 있다는 근사함을 느꼈다. 펄럭이는 속세의 말이 결국 별것 아니라는 깨달음이 시적 지향점이 됐다." 이는 수록작 '불멸'에 이르러 "갈잎 소리 나는 말"로 비문(碑文)을 새기겠다는 결기가 된다. "초탈한 것처럼 건방져 보일 수 있지만, 그게 내 목표다. 정으로 쪼아놓은 듯 뚜렷한 확신의 언어는 얼마나 부질없나." 시인은 이르면 내년 '절의 정거장'이라는 에세이집도 낼 계획. "겨우내 구례 화엄사에 묵으며 생각을 정리할까 한다."

    신춘문예 단골 심사위원인 그는 한양여대 문예창작과에서 15년째 강의하고 있다. "제자들에게 자주 반복하는 말이 있다. 제발 소박하게 써라. 시에 삶이 안 보이고 언어만 보인다. 시가 삶에 작용할지 자문하라. 손으로 공작된 큰 시는 가슴에서 일어나는 가장 약한 시보다 아래다. 간절한 시는 반드시 떨림이 드러난다. 자기가 써서 자기가 먼저 감흥할 수 있어야 한다." 중학교 시절 인천 고향집 다락방에서 소월의 책을 읽고 시에 눈뜬 지 40년, 그의 다짐은 언제나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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