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고민하게 만든 AI·인류의 다음 행선지

  • 정유정·소설가

    입력 : 2017.12.08 03:02 | 수정 : 2017.12.08 08:06

    ① 2017 올해의 책 10

    허구의 안전장치 없는 유발 하라리의 냉정한 경고

    ① 2017 올해의 책 10

    호모 데우스 | 유발 하라리 지음 | 김명주 옮김 | 김영사|630쪽 | 1만8000원


    눈을 감고 옛날 어느 날을 상상해보자. 인류가 꼬질꼬질한 손으로 뭔가를 따 먹고 살던 사바나 촌놈 시절을. 진화의 시계를 24시간으로 가정한다면 현재인 자정에서 3초 전쯤이니 아주 옛날도 아니겠다. 그날 먹을 것을 찾아 나선 촌놈 1호는 무화과가 주렁주렁 열린 나무를 발견한다. 그 나무로 다람쥐 한 마리가 올라가는 것도. 나뭇가지가 입을 쩍 벌려 녀석을 삼켜버리는 것도. 그는 얼어붙는다. 나뭇가지가 아니라 뱀이었구나. 1호는 둥지로 돌아와 촌놈 2호에게 이 일을 들려준다. 2호의 몸에선 1호가 뱀을 봤을 때와 똑같은 신체 표상이 활성화된다. 머리털이 곤두서고, 식은땀이 돋고, 몸이 떨리고….

    이후 그들에겐 나뭇가지만 봐도 줄행랑을 치는 과잉탐지 기제가 발동된다. 이야기를 통해 뱀이라는 낯선 존재에 대한 '두려움'의 감정이 공유되고, '경계'의 개념이 생긴 것이다. 이 감정과 개념이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다룬 인지혁명의 시초다.

    '호모 데우스'는 인지혁명으로 3초 만에 지구를 접수한 사피엔스의 다음 행선지를 보여준다. 그곳은 영원히 살면서(불멸), 걱정 없이(행복), 의지대로 삶을 다루는 초인류(신성)의 세계다. SF나 디스토피아 소설에서 숱하게 봐온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나는 난생처음 본 것처럼 큰 충격과 여운에 휩싸였다. 왜 그랬을까.

    삼각형을 그려보자. 인간을 사실적으로 설명하는 과학은 생물학이다. 반대편엔 우리의 양쪽 귀 사이에 걸린 둥근 소우주(머리라고도 부른다)를 탐사하는 인문학이, 꼭짓점엔 인간을 총체적으로 규명하는 예술인 문학이 있다.

    정유정·소설가
    정유정·소설가

    '호모 데우스'는 삼각형의 중심에 자리 잡고 우리 심연에 잠든 핵심적인 무언가를 즉각적으로 뒤흔든다. 인류의 가장 유서 깊은 감정, 두려움이다. 무화과 나뭇가지인 줄 알았던 것이 실은 우리를 집어삼킬 뱀일지도 모른다는 그 두려움.

    호모 데우스는 분명 허구의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에는 우리를 현실로 무사히 귀환시키는 허구 특유의 안전장치가 없다. '사실'의 레일 위를 달리기 때문이다. 도망칠 곳도, 외면할 길도 없는 여정이고 꼼짝없이 끝을 봐야 한다. 읽는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뒤엉킨다. 지구라는 푸른 별에서 만물과 공생하려면 무얼 추구해야 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찌해 볼 기회가 남아있기는 한지….

    복잡한 감정과 진지하고도 거시적인 고민은 책을 덮고 난 후로도 오래오래 지속된다. 흔치 않은 일이고 소중한 경험이다. 내게는 올 한 해를 통틀어 이 책이 유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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