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보 모두의 실패" 1인칭 고백 소중한 기록

  • 문유석 판사·'개인주의자 선언' 저자

    입력 : 2017.12.08 03:02 | 수정 : 2017.12.08 08:03

    ① 2017 올해의 책 10

    "잘났건 못났건 같이 살자" 백인 노동계층의 진솔한 고백

    힐빌리의 노래

    힐빌리의 노래 | J.D.밴스 지음 |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428쪽|1만4800원

    사실 보편적인 이야기를 다룬 책은 아니다. 미국 애팔래치아산맥 지역에 정착한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 가문 및 그 이웃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날품팔이, 소작농, 광부를 거쳐 기계공이나 육체노동자로 살아온 백인 빈곤 계층이다. 힐빌리(산골 백인), 레드넥, 화이트 트래시라고 불리며 멸시당하곤 하는 사람들의 민낯을 그들 중 한 사람인 저자가 솔직히 털어놓은 이야기다. 그런데 왜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되는 걸까. 간단하다. 이 특수한 이야기를 통해 이 시대의 보편적 징후를 읽어내고 싶기 때문이다. 이들은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어낸, 바로 그 사람들이니까.

    내가 읽은 것은 보수·진보의 사이좋은 실패다. 저자는 자기 이웃들이 오바마로 상징되는 진보 엘리트를 왜 싫어하는지 설명한다. 그들 눈에 아이비리그 출신 지식인인 오바마는 외국인처럼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할리우드와 실리콘밸리의 리버럴들 역시 마찬가지다. 진보는 예의 바르게 빈곤은 사회의 책임이라고 말하지만, 힐빌리가 실제로 목격하는 현실은 아이를 방치하는 마약중독자 부모와 나태한 '복지 여왕'들의 천국이다.

    그렇다고 모든 건 정부의 실패 때문이고 기업만 살리면 다 해결된다고 선동하는 우파를 믿지도 않는다. 공화당의 부자들은 값싼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중국과 무역해서 이윤을 극대화하는 데 관심이 있지 힐빌리들의 삶에 관심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이 민주·공화 양당 대신 트럼프를 선택한 것은 어찌 보면 가장 합리적인 경고 메시지다. 이들은 전 세계에 있다.

    문유석 판사·'개인주의자 선언' 저자
    문유석 판사·'개인주의자 선언' 저자
    영국에서는 브렉시트를 선택했고, 터키에서는 이슬람 원리주의로 회귀하는 대통령 에르도안을 지지하고, 필리핀에서는 두테르테에게 열광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반문명적 퇴행을 진심으로 원할까? 아니다. 이들의 속내는 '너희 잘난 놈들만 잘살지 말고, 같이 좀 살자!' 아닐까. 세계화도 좋고 인공지능도 좋고 인권과 다양성 존중도 좋은데, 그게 엘리트들에게만 좋은 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진짜로 좋다는 걸 믿게 만들어 달라, 증거를 보여 달라, 우리를 시대에 뒤떨어진 촌스러운 낙오자 취급 말고, 너희가 말하는 찬란한 인류 진보 대열에 주인으로 동참하게 해 달라는 외침 말이다.

    내가 이 책을 올해의 책으로 꼽은 이유는 그 외침을 1인칭 시점으로 전해주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니 주변부니 하는 엘리트들의 말 한마디 없이 무덤덤하게 우리 힐빌리들은 이렇게 살아왔다고 쓰고 있다. 그래서 더 귀한 증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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