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 60년 걸려야 完讀이라니…"

    입력 : 2017.12.21 16:14

    [나의 사적인 서가] 소설가 김연수
    끝낸다 약속했지만 지금 속도로는 턱없어 "오래 살아야" 다짐
    크리스마스에는 '하늘을 나는 교실' 다시 읽고파
    월북 시인 백석과는 개마고원 간이역서 회국수 먹어봤으면

    소설가 김연수
    일러스트=안병현
    조선일보 주최 올해 동인문학상의 주인공은 소설가 김애란. 최근 열린 시상식에서 소설가 김연수는 시인 백석(1912~1996)을 호명하며 이날의 주인공에게 축사를 했다. 백석을 소재로 단편소설 '낯빛 검스룩한 조선 시인'을 최근 발표한 그는 요즘 이 천재 시인을 '앓는' 중이다.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싶은 문인 3명을 꼽아보라는 이번 질문에도 예외 없이 그를 택했으니까. 대외 공개용 말고 조금은 내밀한 책 고백, 크리스마스를 앞둔 이번 주의 주인공은 소설가 김연수(47)다.

    -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싶은 작가 3인과 그 이유.

    '놀라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쓴 게오르게 이바노비치 구르지예프(1866~1949). 위대한 성자에서 희대의 사기꾼까지 다양한 평가를 받는 분인데, 그런 평가에 딱 어울리는 그 얼굴을 가까이에서 한번 보고 싶다. 두 번째는 시인 백석. 이분에 대한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은 뒤로 요새 밤낮없이 이분 생각만 하고 있다. 길주에서 혜산선 타고 풍계리 지나 개마고원으로 쭉 들어가다가 어디 간이역에 내려 같이 회국수 사 먹고 싶다. 마지막으로 혜초(704~787). 왜 그토록 어린 나이에 인도까지 가야만 했는지 묻고 싶다.

    - 최근에 나를 웃게 만든 책은.

    서유구(1764~1845)의 '섬용지'. 방대한 분량의 백과사전 '임원경제지'의 일부로 건축, 도구, 일용품을 소개하고 있다. 국사 시간에 실학 배울 때 제목이나 외웠을 뿐 그 내용은 처음 읽었다. 읽어보니 지금까지 내가 읽은 조선시대 책들이 문과 책이었다면 이건 이과 책이다. 옷에 대해 설명해도 반드시 수치를 밝혀 놓아 그대로 하면 누구나 옷을 지을 수 있게 설명해 놓았다. 그중 둥근 소매를 만드는 방법은 나름대로 기발하다. 그건 그렇고 '바늘' 항목에 보면 이런 설명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바늘을 만들 줄 몰라 반드시 연경에서 수입해서 들여온다. 이처럼 날마다 써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조차도 반드시 다른 나라에 의지해야 하니, 만일 요동과 심양으로 가는 길이 3~5년간 막혀 다니지 못한다면 압록강 동쪽에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벌거벗고 다녀야 하는가?' 바늘 하나 못 만들면서 청나라더러 오랑캐 운운한 선조들의 위풍당당함에 웃음이 나왔다.

    - 나를 울게 한 책은.

    책이라기보다는 미야자와 겐지의 '비에도 지지 않고'라는 시. 사실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시다. 시를 읽고 감명받아 쓴 단편소설도 있다. 유튜브를 검색해 일본인들이 이 시를 낭독하는 동영상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에 이 시를 듣다가 또 울었다. 시간이 날 때면 '중쇄를 찍자!'라는 일본 드라마를 한 편씩 보고 있는데, 그중 출판사 사장의 과거를 보여주는 에피소드에서 이 시가 나왔다. 편모슬하에서 자란 그는 중학 시절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자포자기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중 같이 일하던 사람이 미야자와 겐지의 시집을 읽고 있는 것을 본다. 책 같은 거 안 읽고 산 지 오래였는데, 그 사람이 보라며 시집을 건넨다. 그날 저녁에 그는 이 시를 읽는다.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건강한 몸을 갖고……'. "단지 종이에 인쇄된 글자를 순서대로 읽을 뿐인데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고 그는 말한다. 책이 뭐라고, 시가 뭐라고.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왜 울었는지.

    - 죄책감을 느끼지만 즐거워서 읽는 당신만의 길티 플레저 책이 있다면.

    내 산문집 '소설가의 일'에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독하겠다고 쓴 뒤로 다 읽었냐고 묻는 독자분들이 많은데, 여전히 '읽고 있는 중입니다.' 죽기 전까지는 다 읽을 예정인데, 지금의 속도로 계산하면 앞으로 60년 이상 살아야만 할 것 같다. 그 생각을 하면 즐겁다.

    - 크리스마스 때면 다시 읽고 싶은 책은.

    독일 아동 작가 에리히 케스트너의 '하늘을 나는 교실'. 겨울방학이 시작되며 기숙사의 다른 친구들은 모두 고향 갈 일에 들떠 있는데, 집에서 온 편지에는 여비로 쓸 수는 없는 액수의 우표가 들어 있었다. 주인공 소년이 우체국에 가서 그걸 돈으로 바꾸는 장면을 어렸을 때 수없이 읽었다. 소년이 봉투 안의 우표를 꺼내볼 때마다 나도 침이 넘어간다. 그리고 우표를 확인한 뒤 소년과 함께 대실망. 대개 내게도 겨울방학은 그렇게 시작한 것 같다.- 요즘 내 잠자리를 함께하는 책은'나의 아름다운 연인들'. 부제가 '엄마 아빠, 그땐 어땠어?'라고 돼 있다. 저자들에 대해서는 책 안쪽에 적혀 있는데 김동영·백영옥·나희덕·이병률·호원숙 등 잘 알려진 이름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누구일까 궁금한 이름들이다. 책에 있는 문장처럼 뻔한 사랑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엄마 아빠의 사랑 이야기. 그런데 자꾸만 들춰보게 되는데, 그 이유는 사진들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시간을 배경으로 경주, 설악산, 제주도, 진도, 동아대학교, 서울대공원, 태종대 등지에서 젊은 남녀가 서로 껴안거나 손을 잡거나 붙어 서서 찍은 사진들이 사연마다 들어 있다. 이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두고 뻔하다고는 말 못하겠다.

    - 선물로 가장 많이 준 책은.

    새로 펴낼 때마다 내 책들을 증정본으로 많이 보냈다. 모든 책에는 '날개'라는 것이 있고, 그렇다면 책은 날아가는 것이겠다. 내 책도 많이 날려보냈다. 어떤 책은 먼 곳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았을 테고, 어떤 책은 한 번도 읽히지 않은 채 버려졌을 것이다. 어떤 경우든 누군가에게 새 책을 날려보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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