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먼드 카버와 촉각의 힘

    입력 : 2017.12.21 16:17

    [books 레터]

    도쿄행 출장 비행기에서 미국 작가 레이먼드 카버(1938-1988)의 '대성당'을 다시 읽었습니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즈음 이 소설을 집어 드는 건 저만의 의식(儀式)이기도 합니다.

    퉁명스러운 남편과 아내의 눈먼 친구가 손을 맞잡고 리스본 성당을 함께 그리는 따뜻함으로 이 작품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많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앞의 에피소드를 더 좋아합니다. 아내는 소설 속의 '나'와 결혼하기 전, 신문 광고를 보고 일자리를 찾았습니다. 시각 장애인에게 책과 자료를 읽어주는 일이었죠. 한 푼이 급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여름 내내 일하며 둘은 친구가 됩니다. 근무 마지막 날, 눈먼 사내는 그녀의 얼굴을 만져보고 싶다고 말하죠. 그녀는 승낙합니다. 눈먼 사내는 손가락으로 얼굴의 모든 부분을 만집니다. 심지어는 목까지도. 그런 상상을 해 봅니다. 성당을 함께 그리는 대신, 그녀의 얼굴을 함께 그렸다면 어땠을까.

    촉각이야말로 시각 청각 후각 미각을 압도하는 가장 강력한 감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눈의 망막 세포가 빛의 파동을 받아들일 때, 캡사이신이 미뢰 세포를 타격할 때, 성당 파이프오르간의 장중함이 가슴을 관통할 때, 후추의 강렬함이 점막을 자극할 때, 그 모든 감각은 결국 촉각으로 환원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촉각으로 되살린 얼굴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기억 아닐까. 마침 소설가 윤고은이 이번 주에 보내온 '몸의 일기' 리뷰를 읽다가 이어진 연상(聯想)이기도 합니다.

    이번 주 Books는 크리스마스 특집입니다. 시인 서효인과 소설가 윤고은이 존 윌리엄스의 장편 '스토너'와 다니엘 페낙의 '몸의 일기'를 각각 추천합니다. 소설가 김연수는 크리스마스면 다시 읽고 싶은 책으로 독일의 어린이책 작가 에리히 케스트너의 '하늘을 나는 교실'을 꼽았군요.

    공교롭게도 김연수는 '대성당'의 번역자죠. 수백명 일꾼이 오십 년이나 100년 동안 일해야 하나 겨우 짓는 규모의 대성당. 두 남자의 겹친 손으로 지은 대성당처럼, 촉각으로 되살린 눈썹과 입술은 100년이 지나도 잊기 어려울 겁니다. 근사한 크리스마스 되시기를.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