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과 맥아 우유

  • 한은형 소설가

    입력 : 2017.12.21 17:21

    [한은형의 탐식탐독]

    '호밀밭의 파수꾼'과 맥아 우유
    내가 뉴욕에 간다면 그건 샐린저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홀든 콜필드가 쓸쓸히 돌아다녔던 뉴욕, 그것도 연말 분위기로 흥성거리는 뉴욕을 걸어보고 싶기 때문에. 그러니 내게는 크리스마스 하면 역시 샐린저인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떠올리겠지만 나는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떠올린다.

    한없이 마음이 약해지게 하는 소설이다. 보이는 사람한테만 보인다. 싸가지 없어 보이는 우리의 홀든이 사실은 세상에서 상처받은 나머지 벽을 치고 있을 뿐, 심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나는 그의 말과 행동거지를 보며 심장이 눌리는 느낌을 받곤 한다. 어딘가 망가져 세상과 균형을 이루기 힘든 이런 유의 인간을 코믹하게 승화한 것이 CBS 드라마 '빅뱅이론'의 셸던이 될 것이다. 나는 누구보다도 홀든과 셸던에게 공감하는 사람이다.

    뉴욕에서 태어난 샐린저는 뉴욕의 그리니치빌리지 근처에 3주간 머물며 이 소설을 썼다. 크리스마스가 임박한 뉴욕이 배경인 이 소설을 나는 샐린저가 크리스마스가 임박한 12월에 썼다고 확신한다(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생생한 연말의 뉴욕을 주워 담았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리고 이 소설을 쓸 당시 샐린저가 일생일대로 외로운 상태였다는 것도 느낀다.

    언젠가 읽은 샐린저 평전의 작가는 그 이유를 실연에서 찾는다. 샐린저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전 우나 오닐과 사귀었는데, 그가 전장에 있는 동안 우나는 찰리 채플린의 여자가 된다. 찰리 채플린과 우나는 서른여섯 살 차이였고, 우나의 아버지인 극작가 유진 오닐은 그런 딸과 절연한다. 유난히 시원한 입매로 웃고 있는 우나의 사진을 보면서 나는 입이 크다고 묘사되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제인 갤러허를 겹쳐 보았다. 홀든은 마음 깊이 제인을 좋아하는데, 제인 대신 다른 여자와 데이트한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하면, 스케이트를 타는데, 결국 싸우고, 욕을 먹고, 혼자가 된다. 외톨이 홀든은 맥아 우유를 먹는다. 스위스 치즈 샌드위치와 함께 먹는데, 샌드위치보다 맥아 우유가 메인인 느낌이다. 맥아 우유 속 비타민을 찬양하며 H.V. 콜필드의 V가 비타민을 뜻한다며 자신을 '홀든 비타민 콜필드'라고까지 칭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칭 지독한 소식가인 그로서는 엄청난 애정이다. 쓸쓸하지만, 그리 쓸쓸하지만은 않은 연말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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