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한 코끝 만지던 어린시절로

  • 윤고은·소설가

    입력 : 2017.12.21 17:16

    크리스마스를 책으로 즐기는 법

    몸의 일기

    몸의 일기

    다니엘 페나크 지음

    조현실 옮김|문학과지성사

    488쪽|1만7000원


    언젠가부터 요가복 입고 글 쓰는 걸 선호하게 됐다. 근육을 잡아주고 땀 흡수를 돕는 요가복의 기능은 글쓰기에도 도움이 된다. 겨울에 무슨 땀이냐고? 마음만은 땀나게 쓰고 있으니! 놀라운 건 요가복을 입고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요가를 하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나는 이걸 '라이팅웨어(writing-wear)'라고 부르는데, 처음부터 이런 용도였던 건 아니다. 요가를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는데 옷을 너무 믿게 된 나머지 '세상 만물이 다 요가'라는 식이 되고 말았다. 물론 이 스타일을 계속 고수할 생각은 없다. 새해에는 '진짜' 요가를 하고 내 몸에 대해 기록할 것이다. 몸에 대해 기록하는 건 어떤 영감의 이동 경로에 대해 기록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프랑스 작가 다니엘 페나크의 책 한 권이 이런 생각에 확신을 더해줬다. 몸이야말로 진짜라고.

    다니엘 페나크의 '몸의 일기'는 열두 살부터 여든일곱 살까지 한 남자가 쓴 일기 형식의 책이다. '우리 목소리는 바람이 우리 몸을 통과하면서 연주하는 음악이다. 항문을 빠져나가지 못한 바람 말이다'처럼 책 안에는 몸에 대한 은유가 가득하다. 통계치로 말할 수 없는 고유한, 성장과 노화의 지도인 셈이다. 12-13세의 일기엔 오줌을 누는 세 가지 방식이라든지, 잠들기 위한 기술처럼 '법칙'이나 '기술'이 꽤 등장하는데, 성장할수록 그런 단어들이 사라진다는 것도 흥미롭다. 86세의 어느 일기에서처럼 '우리 몸은 끝까지 어린아이'인 것이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다만 계속 탐구할 뿐인. 어릴 때 코 푸는 법으로 고민하던 그는 27세에 자신이 코를 곤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고, 34세엔 코딱지가 주는 희열에 대해 고백한다. 평생 왜 코를 후비는 건지를 탐구하다가 마침내 코딱지는 핑계고 말랑한 코끝의 연골을 만지는 게 핵심이라는 결론을 내기에 이른다. 연골을 만지는 것이 기다림을 배우게 한다는 것이다. 그 결론에 누가 반박할 수 있겠는가, 저마다의 연골은 다 다르니.

    크리스마스를 책으로 즐기는 법
    박상훈 기자
    크리스마스를 앞둔 지금 이 책을 떠올리게 된 것도 그 감각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의 고전적인 선물로 양말이나 장갑, 목도리 같은 것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피부에 닿는 '촉각'의 힘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지금 책 한 권을 선물할 수 있다면 나는 '몸의 일기'를 고를 것 같다. 이 책은 꼬집고 만지는 감각의 힘을 부추기니까. 정작 책 안에는 크리스마스에 대한 언급이 많지 않다. 13세에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점차 크리스마스는 수많은 날의 하나, 혹은 기록에서도 생략된 그런 날이 된다.

    인상적인 것은 66세의 크리스마스의 기록이다. 그는 지난밤에 너무 ‘젊은 사람’처럼 먹었던 탓에 어지럼증을 느꼈다고 말하는데, 그 어지럼증 속에서 어릴 때 갖고 놀았던 장난감의 이름을 기억해내느라 애쓴다. 그리고 다음 날 그게 일종의 팽이와 같은 ‘자이로스코프’라는 것을 기억해낸다. 마치 중생대의 그거 뭐지, 아 암모나이트! 하듯이 말이다. 크리스마스를 축제처럼 만질 수 있는 시간은 유년기뿐이고, 그런 의미에서 크리스마스가 현재형인 시간은 아주 짧다.
    윤고은·소설가
    윤고은·소설가
    어른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새 달력과 헌 달력 사이, 유예기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이미 어른이 된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현재형으로 누리는 법에 대해서 약간의 힌트를 주고 있는데, 그건 ‘기록’하는 것이다. 한 소년이 열두 살 때 숲에 버려진 후 자신의 몸을 관찰하고 기록한 것이 ‘몸의 일기’의 시작이었다. 공포를 견디기 위해서였는데 결과적으로는 자기 몸의 주체가 되는 길이기도 했다. 크리스마스는 ‘자이로스코프’처럼 추억이 됐지만, 크리스마스를 지나는 몸 하나는 여기 내 손이 닿는 위치에 있다. 이를테면 코끝의 연골 같은 것. 지금 ‘몸의 일기’에 함께하기를 권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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