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재우고 트리 불빛을 끈다면

  • 서효인·시인

    입력 : 2017.12.21 17:17

    크리스마스를 책으로 즐기는 법


    스토너

    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알에이치코리아

    396쪽|1만3000원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를 떠올릴 이유는 사실 별로 없다. 이 소설은 신앙과 믿음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아니며, 나눔이나 배려에 대한 권유도 없다. 고귀한 사랑은커녕 제대로 된 데이트 장면 하나 나오지 않는다. 소설은 1891년 미국 미주리주 작은 마을의 농가에서 태어나 1910년 미주리 대학에 입학하여 평생을 대학에 머물다 1956년에 세상을 떠난 무명 학자, 윌리엄 스토너의 이야기다. 첫 페이지에서 작가는 주인공에 대한 세상의 각박한 평가를 가감 없이 노출한다. "노장 교수들에게 스토너의 이름은 그들을 기다리는 종말을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하고, 젊은 교수들에게는 과거에 대해 아무것도 일깨워 주지 않고 동질감을 느낄 구석도 전혀 없는 단순한 이름에 불과하다."

    이 소설이 그리는 크리스마스의 풍경은 단 한 장면이다. 스토너의 결혼 생활이 사랑이라는 이름의 열정이 생략된 희곡임이 분명해지던 해의 크리스마스였다. 그에게는 경멸과 냉담을 나누는 아내 이디스 사이에서 낳은 딸, 그레이스가 있었다. 그해 12월 25일, "두 사람은 트리 장식물에서 반짝이는 불빛들과 암녹색 트리 속에서 숨은 불꽃처럼 빛나는 반짝이 장식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스토너에게 크리스마스다운 크리스마스는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크리스마스를 책으로 즐기는 법

    스토너는 훌륭한 교육자이고 싶었지만, 학생들에게 널리 기억되지 못했다. 스토너는 성실한 학자였지만 두드러진 업적을 인정받진 못했다. 스토너는 딸을 아꼈지만 허물어져 가는 딸의 인생을 바라볼 뿐이었다. 스토너는 사랑을 원했고, 또한 사랑을 했으나 그 모든 것은 과거형이 되었다. 스토너는 그에게 벌어진 일을 그대로 감내하는 사람이며, 손쉬운 죄책감마저 거부하는 사람이다. 아무래도 '스토너'는 크리스마스와는 어울리지 않는 소설인 것 같다. 주인공은 무능력한 괴짜임이 분명하며, 플롯과 구성에 놀랄 만한 그 무언가가 숨어 있는 것도 아닌 이 둔중한 소설을 그럼에도 끄집어낸 이유는, 앞서 말한 실패들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는 그 기원이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1년마다 찾아오는 정기 이벤트가 되었다. 해마다 이즈음이면 괜한 설렘이나 흥분이 내게도 있었으나 어쩐지 스토너처럼, 딸의 아버지가 된 이후로는 확연히 덜하다. 대신 지난해와 다름없었던 올해를 반성하며 필연적으로 음울해지기 일쑤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 몇 차례의 크리스마스를 지내고 나면 올해 연말은 어땠다고 이야기할 것도 없는, 스토너 같은 인간이 될 것이란 확신이 든다.

    예수의 마지막 고행처럼 우리의 어떤 하루는 우리의 삶 모두를 삼키고 흔들겠지만, 예수 탄생 이후 지금까지의 역사처럼 우리 인생의 매일매일은 단단하게 지속될 것이다.

    서효인·시인
    서효인·시인
    사실은 나에게도 작은 트리가 있다. 스토너처럼, 거실 테이블 한쪽에 놓아두고 연말이면 불빛이 반짝이게 켜둔다. 딸들은 아직 어리기에 소설 속 그레이스처럼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도 없지만, 딸들은 현실 속 인물들이기에 어떠한 앞날도 미리 점칠 필요는 없겠다. 스토너는 한 아이의 엄마이자 삼십 대 중반의 알코올중독자가 되어 버린 딸과의 마지막 대화 후,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에게 인생은 이벤트가 아니었다. 그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삶을 택했고 그로 인해 고독해졌으며 그러한 운명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스토너의 삶에서 예수의 그것을 느꼈다고 한다면, 무례한 과장이겠으나 그런 생각을 하는 날이 크리스마스라면 아주 용서받지 못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아이들은 잠들었고, 이제 트리의 불빛도 소등할 시간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질문을 던질 시간이다. 이대로 실패해도 괜찮은가, 자문할 날이 왔다. 이는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물음이며, 그것이 ‘스토너’의 책장을 덮은 직후라면, 더욱 적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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