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을 자초하다

    입력 : 2017.12.28 16:24

    [books 레터]

    미국 실리콘밸리 근처에 월도프(Waldorf)라는 학교가 있습니다. 8학년, 그러니까 한국 학제로 중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스마트폰과 노트북 등의 사용을 금지한다는군요. 흥미로운 사실은 이 학교 재학생 부모의 85%가 실리콘밸리 첨단 기업을 다닌다는 것. 그러고 보니 생전의 스티브 잡스(1955-2011)가 2010년 아이패드를 처음 발표했을 때의 뉴욕타임스 인터뷰가 생각나네요. 비범한 녀석을 만들었다고 자찬하다가, 당신 아이들도 좋아하냐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내 아이들에게는 전자 기기 사용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는 일화 말입니다.

    이제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TED 강연'. 올해 가장 인기 있었던 '2017 Top 10'을 봤습니다. 뉴욕대에서 심리학을 가르치는 애덤 알터(Alter)의 강연이 기억에 남는데요. 제목은 '전자 기기의 화면이 우리를 덜 행복하게 만드는 이유(Why our screens make us less happy)'. 그는 지난 10년의 변화를 단순한 그래프로 보여줍니다. 2007년, 2015년, 2017년의 비교죠. 2007년은 아이폰이 처음 세상에 나온 해. 그때나 지금이나 잠자는 시간과 일하는 시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유일하게 급증한 건 스마트폰 보는 시간. 덕분에 2007년에도 많지 않았던 여유 시간, 즉 삶의 의미를 돌아보고 미래를 생각해보는 여백의 시간은 정말 눈곱 크기로 줄어들었더군요.

    이 심리학자의 강연에서 인상적인 실험이 있었습니다. 사용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스마트폰 앱과 반대로 기분이 나빠지는 앱의 리스트. 휴식·운동·날씨·독서·교육 관련 앱은 전자, 데이트·게임·오락·뉴스 검색 등은 후자. 그런데 전자에는 하루 9분을 쓰고 후자에는 27분을 쓴다는 거죠. 우리는 스스로를 덜 행복하게 만드는 앱에 무려 3배의 시간을 쓰고 있다는 겁니다.

    예전에는 '정지 신호'가 많았습니다. 신문도 잡지도 마지막 페이지가 있고, 드라마도 일단 끝나면 일주일을 기다려야 볼 수 있었죠.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스마트폰은 정지 신호가 없죠. 한 번 붙잡히면 끝까지 휘둘립니다.

    종이 책을 읽는다는 건 일종의 삶의 브레이크가 아닐까요.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살게 하는 시간. 2017년의 마지막 Books입니다. 풍요롭고 의미 있는 각자의 정지 신호를 발견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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