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가 아닌 사자로 일을 해야 한다"

  • 뉴시스

    입력 : 2018.01.05 09:17

    박경숙 작가, 뉴시스 인터뷰
    ■'어쨌거나 회사에 다녀야 한다면' 저자 박경숙씨
    대한민국 1호 인지과학 박사, 인지심리학적 처방전
    "회사만 그만두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구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쨌거나 일을 해야 한다면 그 일이 당신을 구원하게 하세요."

    대한민국 1호로 연세대 대학원에서 인지과학 박사학위를 받은 박경숙씨는 "일이 있고 없고는 생각보다 우리 마음에 중대한 작용을 한다"며 "어떤 마음으로 일을 하는지가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녀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 초빙교수, 연세대 전기전자공학과 연구교수 등을 지내며 인지과학을 로봇에 응용하는 기술을 연구했다. 현재 협성대 객원교수로 활동 중이다.박 교수는 최근 '어쨌거나 회사를 다녀야 한다면'(위즈덤하우스)을 냈다. 업무 무기력에 빠진 직장인들을 위한 심리 처방전이다. 업무 무기력의 원인을 밝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인지심리학적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녀는 "한 회사에서 업무 무기력 해소에 관한 컨설팅을 의뢰해왔다"며 "다양한 직업의 직장인을 상담하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업무 무기력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책을 내기로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업무 무기력에 빠졌을 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고, 회사를 그만두면 오히려 더 큰 문제에 빠질 수 있어요.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극복한다면, 일에 더 집중하고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 열풍이 불고 있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피로 사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 연간 근로시간은 2015년 기준 2113시간으로 OECD 회원국 평균 1766시간보다 347시간 많다. 우리나라 근로자 노동시간이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길다.

    과로사 관련 보도나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소진 증후군)을 접하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다.

    무엇이 직장인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었을까.

    "대체적으로 과도한 업무량, 회사 내에서 미미한 존재감, 성과불만족, 적성에 맞지 않는 일 등으로 일하기가 싫고 업무 무기력을 느낍니다. 특히 자신이 하는 일이 전체 회사에서 어떤 위치인지를 모르는 상태이거나 자신의 미래에 대해 예측할 수 없다는 식의 '통제 불가능'과 '예측 불가능'이 무기력의 가장 큰 인자입니다. 실제로 컨설팅해보면 이 두 인자가 지배하는 곳에서 무기력을 만납니다."

    자신 역시 "논문이나 책을 구상할 때 오랫동안 업무 무기력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이런 종류의 무기력은 작가가 창작활동을 할 때,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 때 나타나는 현상과 동일한 것 같습니다. 지루하고 힘든 시간을 통과해야 새로운 이론이나 작품이 만들어지잖아요. 지금도 새 책을 쓸 때 늘 무기력과 저항을 만납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폭발적으로 글을 쓰게 됩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매일 조금씩 글을 미리 써두려고 노력합니다."
    업무 무기력은 일 뿐만 아니라 일상 전체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자신감과 자존감도 떨어뜨리고, 자괴감을 키우며 '할 수 없다는 생각'을 고착화시킨다.

    어떻게 하면 무기력을 벗어날 수 있을까. 박 교수는 인지과학을 토대로 동기·정서·의지·인지·행동이라는 다섯 가지 마음의 역할을 강조했다.

    '동기'는 일하는 의미와 이유·의욕을 만들고, '정서'는 일의 창의성과 생산성을 조절한다.

    '인지'는 치우친 감정에서 벗어나 현실을 균형 있게 볼 수 있도록 돕고, '행동'은 동기·정서·인지·의지가 결합해 만드는 최종 결과물이다. '의지'는 어떠한 상황에서든 집중해서 일을 마치도록 하는 힘이다.

    박 교수는 "마음의 5가지 요소가 중요하다"며 "일의 동기는 소명, 인지는 자신감, 정서는 유능감, 행동은 일이 습관이 되게 하는 것, 의지는 집중력 유지로 요약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마음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왜 업무 무기력에 빠졌는지 직접 진단할 수 있다"며 "스트레스가 반드시 업무 무기력을 낳는 것은 아니다. 적절한 스트레스는 오히려 일의 생산성을 높여준다"고 했다.

    "일을 하다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이 스트레스만 사라지면 일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스트레스 상황은 잘 바뀌지 않아요. 그것이 사라져도 또 다른 스트레스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스트레스에 술을 마시는 것이 오히려 우울증을 만들어 낸다.

    "직장 동료와 퇴근 후 술을 마시며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하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마음도 위로를 받죠. 하지만 일시적인 기분전환에 그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근본적으로 일의 즐거움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 하는 일이 자신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고, 자신감을 회복하는 게 중요합니다."

    박 교수는 "혼자 일할 때보다 함께 일할 때 일의 성과가 좋을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팀장이 일을 푸쉬(push) 할 때 약간의 스트레스가 생기면서 그 일에 매진하고, 생산성이 올라갑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까지는 생산성이 높아지지만 너무 과도한 스트레스는 초조·불안·긴장·혼란을 줍니다. 신체에도 문제를 일으켜서 두통·위통·요통·우울증 등을 가져옵니다. 이 때부터 무기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스트레스가 극도에 달하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무한 경쟁사회에서 자존감이 낮아진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현대인의 우울증 원인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인생 전체에서 어떤 스토리를 만들어 나가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자존심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옵니다. 남보다 내가 더 낫다는 생각에서 만들어집니다. 반면 자존감은 남과의 비교가 아니고,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니체가 말한 '아모르 파티'(Amor Fati·운명을 사랑하라)로, 굉장히 높은 수준의 의식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스스로를 믿어주고, 탁월하게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반복하는 게 중요합니다."
    결국,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일이 필요하다.

    "직장일이 힘들 때는 퇴직하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막상 퇴직하고 나면 너무 느슨해져서 하루를 그냥 소진해 버리죠. 스트레스가 아예 없으면 일해야 할 이유도 없어서 우리 속의 어두운 본성이 작용해서 아무 일도 안 해요. 그래서 생산성이 제로(0)가 됩니다."

    직장인에게 꼭 하고 싶은 조언을 묻자 그녀는 "독일 철학자 니체는 사람을 낙타(노예)와 사자(주인)와 어린아이(초인)으로 분류했다"며 "낙타가 아닌 사자로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니체의 말을 빌리자면, 시키는 일만 하는 직장인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 주인의 일을 하는 것이다.

    "낙타는 누군가의 노예로 일을 하고, 사자는 자신의 일을 합니다. 아이는 일을 즐기며 창의적으로 해냅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하면 초인이 됩니다. 결국 우리는 죽을 때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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