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가 인간 지배할 것이다"...새뮤얼 버틀러 '에레혼'

  • 뉴시스

    입력 : 2018.01.08 10:02

    '에레혼', 책
    150년 전, 영국 제국주의가 건설한 식민지에서 양치기로 살던 모험심 강한 청년이 높은 산맥을 넘어서 미지의 나라 에레혼에 당도한다.

    에레혼(Erewhon)은 'nowhere'를 거꾸로 쓴 것으로, 이를테면 유토피아를 역으로 상징한다.

    질병은 죄악으로 간주되어 병자는 처벌받는다. 반면, 범죄자는 일말의 죄의식도 느끼지 않으며, 이성보다는 부조리를 선호하는 이상한 나라다.

    이곳에는 기계가 모조리 자취를 감추었는데, 기계가 진화해 인류를 위협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모든 기계의 씨를 말린 것이다.영국 소설가 새뮤얼 버틀러(1835~1902)가 쓴 '에레혼'이 국내 번역·출간됐다.

    '에레혼'은 현실의 세상을 역전시켜 19세기 당시 영국의 습속을 비판한 풍자작품이자, 인공지능과 인공생명의 도래를 예견한 미래소설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상상의 나라에서 겪은 모험담은 18세기 영국의 대표적 풍자작가인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의 형식을 빌려 당대의 세태를 풍자한다.

    환자와 범죄자의 위치가 뒤바뀐 설정과 이성에 대한 에레혼의 몰이해는 산업화와 자본주의화가 소외시킨 인간성에 대한 고발로 읽힌다.

    "에레혼에서는 어떤 사람이 몇 분간이라도 자신의 폐에 공기를 채우지 않고 버티는 상황을 엄격하게 금지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의도치 않게 물에 빠졌더라도 공기의 신은 무척 분노하며 참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이 우연히 혹은 사고로 물에 들어갔는지,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려거나 혹은 공기의 신을 무시하려고 그랬는지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물 밖으로 고개를 높이 쳐들어서 공기의 신을 정당하게 인정하지 않는 한, 공기의 신은 그를 죽일 것이다."(180쪽)

    "인간의 영혼은 기계 덕분에 가능하다. 어찌 보면 인간은 기계로 만들어진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고 느끼는 대로 느끼는데, 이는 기계가 인간에게 초래한 작업을 통해서이다. 기계와 인간은 서로에게 필수적인 존재이다. 이 사실 때문에 우리는 기계의 완전한 멸절을 제안하지 못하지만, 기계가 더욱 완벽하게 우리를 독재하지 못하게끔 우리에게 없어도 될 만큼은 기계를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257쪽)

    에레혼 사람들은 나날이 발전을 거듭하는 기계가 언젠가는 의식을 갖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인간의 길을 증기기관이 가지 못하란 법은 없다. 인공지능과 로봇의 여명기인 현재, 기계가 진화해 의식을 얻게 되리라는 150년 전의 예측은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들어맞고 있다.

    다만, 고도로 발달한 기계문명에 대한 에레혼 사람들의 전망은 지극히 부정적이며 방어적이다.

    인간보다 강력해진 기계가 인간을 노예로 부릴 것이라는 불안에 젖어 결국 기계를 파괴하고 박물관에 박제해 인류 말살의 단초를 제거했기 때문이다. 기계의 부재는 '에레혼'의 핵심 주제이다. 한은경 옮김, 328쪽, 김영사,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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