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삶 기록하며 눈물 쏟았어요"

    입력 : 2018.01.09 03:29

    과천 어르신 자서전 발간 사업
    부모세대 사연 자녀세대가 代筆… 일제·전쟁 겪은 9명 이야기 엮어

    "시어머니의 고단했던 삶을 노트에 받아 적으며 몇 번이나 눈물을 쏟았는지 몰라요. 이 얘기를 아이들에게도 꼭 해줄 거예요."

    경기도 과천에 사는 이애경(71)씨가 최근 중풍으로 와병 중인 시어머니 박상임(93)씨의 자서전을 썼다. 지난해 4월부터 연말까지 같은 과천에 있는 시누이 집에 계신 시어머니를 뵈러 갈 때마다 노트와 필기구를 챙겼다. 원래 자신의 집에서 시어머니를 간병했으나 몇 년 전 허리 수술을 받은 이후 시누이 집으로 모셨다.

    이씨는 "한 달에 2~3번씩 시어머니를 찾아보러 갈 때면 며칠씩 함께 자면서 옛 이야기를 들었다"며 "두서없이 말씀하시는 것을 시간순으로 다시 배열해 정리하고, 다음 병문안 때 시어머니에게 읽어주며 내용이 맞는지 확인했다"고 했다.

    "옛날이야기를 시작하니 시어머니의 어눌했던 발음이 또렷해지고 생기가 돌기 시작했어요. 밤 11시가 넘어 '주무시고 내일 더 해요'라고 말씀드려도 계속 하자고 조르기도 하셨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어머니가 많은 위로를 받은 듯했습니다."

    지난달 16일 경기 과천종합사회복지관에서 열린 공동 기록 유산집 출간기념회에서 자서전을 발간한 어르신들과 자녀·손주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달 16일 경기 과천종합사회복지관에서 열린 공동 기록 유산집 출간기념회에서 자서전을 발간한 어르신들과 자녀·손주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시니어앤워크스
    1924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시어머니 박씨는 6·25전쟁 당시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조치원 피란민 수용소에서 강냉이 가루를 배급받아 근근이 버티던 경험, 폐허가 된 서울로 돌아와 비참하게 생활하던 대목에서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씨는 "자서전을 시어머니 손에 쥐여 드리니 한참을 책을 폈다 접었다 하셨다"고 했다.

    이씨가 시어머니 자서전을 대필한 것은 경기도와 과천시가 기획한 공동 기록 유산집 '자손들과 함께 쓴 민초들의 고난 극복 현대사' 발간 사업에 참여한 게 계기가 됐다.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을 겪은 어르신 9명의 이야기를 자녀와 손주들이 직접 듣고 대필(代筆)해 자서전을 만드는 프로젝트다.

    고등학교 3학년인 신지원(19)양은 할아버지 신보현(73)씨의 삶을 기록했다. 해방둥이로 태어난 할아버지는 6·25전쟁 이후 토지개량조합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군종병으로 복무하던 얘기를 들려주었다. 신양은 "'반공' '말죽거리' 같이 생소한 단어가 많았지만 평소 존경하던 할아버지의 삶을 꼭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고 했다. "떡 장사를 하면서 힘겹게 자식을 키운 증조할머니 얘기를 하시다가 할아버지가 울컥하셨어요. 저도 눈물이 났죠. 이웃에게 베풀며 살아온 할아버지 삶을 돌아보면 저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것 같아요." 할아버지 신씨는 "그동안 특별하지 않다고 여겨온 내 삶을 돌아보는 소중한 계기가 됐다"며 "손녀가 자서전 서문에 '할아버지를 존경하고 닮고 싶다'고 쓴 문구를 보면서 가슴이 먹먹했다"고 했다.

    김용동(71)씨는 어머니인 송영갑(95)씨의 자서전을 대필했다. 김씨는 "어머니의 고생스러웠던 삶을 기록하면서 저도 제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이들 9명의 기록은 300쪽 합본으로 묶였고, 모두 100부를 찍어 각급 학교와 도서관 등에 배포했다. 지난달 16일에는 과천종합사회복지관에서 조촐한 출간기념회를 열었다.

    자서전 집필을 지도한 박수천(68) 시니어앤워크스 회장은 "자신의 삶을 구술(口述)한 부모 세대는 긍지와 위로를 느꼈고, 자녀 세대는 부모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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