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의 '북관'과 '섞박지'

  • 한은형 소설가

    입력 : 2018.01.11 15:51

    [한은형의 탐식탐독]

    백석 전집
    저마다 책 고르는 방식이 있을 텐데, 내 방법 중 하나는 이것이다. 작가의 인상을 본다. 눈빛에서는 야심을, 표정에서는 얼굴 근육 쓰는 방식을, 헤어스타일에서는 미감을, 옷차림에서는 애티튜드를 읽을 수 있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그냥 끌리는 얼굴이 있다. 읽고 싶게 생긴 얼굴. 백석도 그런 얼굴이다.

    일단 머리부터. 모던보이 박태원의 작정하고 멋 부린 머리와도, 포마드 듬뿍 발라 넘긴 임화의 실업가형 머리와도 다르다. 옆으로 늘려놓은 솜사탕처럼 부풀어 있는 봉두난발, 절묘하게 계산되었으나 작위적으로 보이지 않는 봉두난발이다. 다다이스트보다 더 멋진 머리를 한 이 식민지 조선의 청년은 자기가 태어난 마을과 마을 사람과 마을 생활에 대해 시를 썼다. '고방' '가즈랑집' '여우난골' '물닭의 소리' 같은 제목에, 방언을 쓰고, 토속적 소재를 취하지만 백석의 시는 촌스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석박지
    '북관'도 그러하다. "명태(明太) 창난젓에 고추무거리에 막칼질한 무이를 비벼 익힌 것을/ 이 투박한 북관(北關)을 한없이 끼밀고 있노라면/ 쓸쓸하니 무릎은 꿇어진다." 시인은 북관에 머물고 있다. 함경남도와 평안북도 일대를 북관이라 하는데, '함주시초'라는 부제를 붙인 걸 보니 함주에 있는 것 같다. 창난젓 깍두기를 씹으며 북관의 자신을 바라보는데 외롭다거나 슬프다고 하지 않고 '쓸쓸하니 무릎은 꿇어진다'며 비켜 말하고 있다.

    이 짧은 한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 별별 생각이 무럭무럭 나게 만드는 것이다. 앞에서 편의상 '창난젓 깍두기'라고 쓰긴 했으나 '막칼질한 무이를 비벼 익'힌다고 쓴 것으로 볼 때 저 음식은 깍두기가 아니라 섞박지에 가까운 것 같다. 깍두기는 적당한 두께로 일단 잘라놓은 무를 켜켜이 쌓고 가로로 세로로 찹찹 장방형으로 썰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시가 얼마나 인상 깊었으면 나는 백석을 따라 창난젓 섞박지를 담갔다. 소금간은 하지 않고, 고춧가루를 줄이고, 창난젓에 무를 비빈다는 느낌으로. 결과는 대성공. 자매품으로 아가미젓 깍두기도 만들었다. 나는 겨울이면 이런 걸 만드는 사람이고, 그럴 때마다 백석을 떠올린다. 어떨 때는 녹두빛 더블브레스트 재킷을 입은 그를, 또 어떨 때는 멋대가리 없는 중산복을 입고 미모도 잃고 생기도 잃은 말년의 그를 말이다. 말년의 백석은 북에서 산판공이 되었다는 말도 있고, 양치기가 되었다는 말도 있는데, 이런 말을 들으면 내 무릎은 꿇어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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