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의 술잔에 누가 막걸리를 부었나

    입력 : 2018.01.12 00:13

    천상병시인기념공원 조각상
    매일 빈 잔에 막걸리 채워져

    "누가 자꾸 천상병 시인에게 막걸리를 따라주는지 모르겠다."

    인천 천상병시인기념공원에 있는 천상병 동상의 빈 잔에 막걸리가 언 채로 담겨 있다.
    인천 천상병시인기념공원에 있는 천상병 동상의 빈 잔에 막걸리가 언 채로 담겨 있다. /박상희씨 제공
    지난달 인천시 강화군 건평항에 조성된 천상병시인기념공원에 천상병(1930~1993) 시인의 동상이 있다. 대표작 '귀천(歸天)'의 시비(詩碑)도 함께 들어섰는데, 과거 건평나루 주막에서 막걸리를 마시다 쓴 시가 '귀천'이라고 한다. 애주가로 유명한 시인답게 동상은 막걸리 통에 잔을 들고 앉아 있는데, 누군가 매일 천상병의 빈 잔에 막걸리를 채우고 있다.

    동상을 제작한 조각가 박상희(63)씨는 처음엔 당황했고 나중엔 화가 났다가 이제는 초연해졌다. "강화도에 작업실이 있어서 거의 매일 공원에 들르는데, 갈 때마다 천상병이 들고 있는 빈 잔에 막걸리가 담겨 있었다. 추운 날은 얼어 있기도 하고. 동상이 부식될까 봐 매번 치웠는데 다음 날 가보면 또 채워져 있더라. 공원 주변엔 수퍼마켓도 없는데."

    천상병은 생전 남긴 시에서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밥이나 마찬가지다'라고 썼다. 박씨는 "동상이 조금 손상되더라도 인물을 기리는 동상에 감상자가 직접 참여하는 것이 작품을 과거가 아닌 진행형으로 존재하게 하는 의미가 있다"며 "시인을 사랑하는 익명의 그분과 훗날 만나게 된다면 함께 막걸리 한잔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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