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수성 정도는 스스로

    입력 : 2018.02.08 15:00

    [books 레터]

    이한수 books 팀장
    이한수 books 팀장
    누군가 전화선 너머에서 부장에게 꾸지람을 듣고 있습니다. 가슴이 덩달아 두근두근 뜁니다. 혼나는 대상에 금세 감정이입이 됩니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울까. 그런데 다른 얘기를 들었습니다. 오죽하면 그랬겠니? 부장도 피해자야. 흠, 그럴 수도 있겠네요.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Me too)' 관련 기사 댓글을 보다가 화들짝 놀랐습니다. 용기를 내 피해를 고발한 이에게 일부 댓글은 욕설을 퍼붓고 있더군요. 오죽하면 그랬겠니? 남자도 피해자야. 흠,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다행히도 준엄하게 꾸짖는 글이 더 많습니다. 그중 '피해자에 대해 인권 감수성을 가져라'는 글이 눈에 띄었습니다.

    일본 시인 이바라키 노리코(1926~2006)의 시가 문득 떠오릅니다. 최근 번역 출간된 '내가 가장 예뻤을 때'(스타북스)에 실린 시입니다. '파삭파삭 말라가는 마음을/ 남 탓하지 마라/ 스스로 물주기를 게을리해놓고// 서먹해진 사이를/ 친구 탓하지 마라/ 유연한 마음 잃은 것은 누구인가// 초심을 잃어가는 것을 세월 탓하지 마라/ 애초부터 미약한 뜻에 지나지 않았다// 네 감수성 정도는/ 스스로 지켜라/ 바보야'('네 감수성 정도는' 일부).

    노리코 시인은 윤동주의 시를 읽고 쉰 살 무렵 한글 공부를 시작합니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 식민지 젊은 시인에게 미안해하며 윤동주의 시를 일본 교과서에 싣게 합니다. 피해자에 대한 인권 감수성이 높았기 때문일 터이지요. 왜 책을 읽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렵니다. 감수성 정도는 스스로 지키기 위해서라고. 공감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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