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 시인 "입술은 행동할 수 있다"

  • 뉴시스

    입력 : 2018.02.13 09:15

    시인 김현, '입술을 열면'
    "독자들이 시집을 사람처럼 대해줬으면 합니다. 무생물이 아니라 마치 사람과 대화하듯이 읽어주길 바랍니다."

    김현 시인은 최근 낸 두번째 시집 '입술을 열면'(창비)에 대해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으려고 노력했다"며 "독자들과 교감할 수 있는 시집이길 바란다"며 이같이 말했다.

    4년 만에 펴낸 이번 시집을 펼치면 '조선마음' 연작시가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늘은/반듯이//입춘이라는 단어를/입술에서 떠나보낸다//그게 봄이다//봄에는/꽃을 주는 사람이 되자//마음먹고/꽃이 피지 않는 식물을 산다"('조선마음8' 중)"옛 남자를 생각한다//가령//낙엽이 멀어졌어/낙엽을 주었구나//옛 남자는 옛 생각을 말한다/불멸이 그것이다"('조선마음6' 중)
    애초에 시인은 '조선마음'을 가제로 두고 이 시집을 엮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마음을 담고 싶어 '입술을 열면'으로 시집 제목을 바꿨다.

    "원래 '조선마음'을 제목으로 달고 싶었는데, 시집 원고를 모아 구성해봤더니 '입술'이라는 말을 많이 썼더라구요. 마음보다는 입술이 훨씬 구체적이고 보이는 것이잖아요. 입술은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입술을 열면 미래가 나타나고'라고 지었다가 편집자와 상의해서 '미래가 나타나고'를 뺐다.

    "여운을 남기기 위해 '입술을 열면' 뒤에 오는 말은 독자들 몫으로 했어요. 시집을 다 읽고 독자들이 자신만의 언어로 '입술을 열면' 뒤의 말을 채워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때서야 완성되는 시집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시집에는 2014년 세월호 침몰사건을 비롯해 사회 현실에 대한 치열하고 담대한 저항이 담겼다.

    김 시인은 "세월호 사고를 처음 접했을 때의 슬픔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며 "그 이후에 누군가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해서 계속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꼭 연인이 아니더라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 타자와 맺고 있는 관계들을 어떻게 소중히 바라볼 것인가, 타자와 교감하고 연결됐을 때 발생하는 일은 무엇인가, 자기 자신에게 채워지는 것은 무엇인가 등 여러가지 면을 생각해봤습니다."
    "그의 얼굴은 흑백이다/그는 여전히 산 자들의 세계를 걸어다닌다//그는 바다에서 세월을 보낸 얼굴을/집에서 늙은 얼굴로 본다//말을 기억해야 해/그는 말하고 그는 말의 뒤에서 잔다"('죽은 말' 중에서)"국가란/각별한 주의를 요구합니다//이 아이들은 이 아이들과 중학교를 같이 다녔습니다/역사의 주인공들이지요//어디서 노란 것을 구조해왔나요"('열여섯번째 날' 중에서)

    그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304명을 기억하기 위해 매달 동료들과 낭독회를 가졌다"며 "그 때 겪은 일을 갖고 '열여섯번째 날'이라는 시를 쓰게 됐다. 특별히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사건을 기록하는 게 아니라 그 사건 이후에 살아 남는 자들의 몫은 무엇일까,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 등을 두루 생각해볼 수 있는 시집이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김 시인의 시선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과거의 역사적 사건 뿐만 아니라 미래의 세상에 대해서도 메시지를 전한다.

    총 53편의 시가 묶여 있다. 김 시인은 "시인들이 내는 모든 시집이 단편적인 게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며 "이번 시집도 한 편의 시처럼 보여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그는 시에 대해 "먹고 자는 것과 비슷하게 뭔가 떠오르면 시나 글로 표현하기 때문에 삶의 일부분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한 번에 쏙 들어오는 것은 아니나 여러 번 보거나 곱씹어 볼수록 무언가가 생각나는 것"을 시만이 갖고 있는 매력으로 꼽았다.

    시집에서 디졸브(dissolve, 장면전환기법)라는 영화적 기법을 주로 사용했다.

    "영화를 굉장히 좋아해서 영화적인 문법을 시 안으로 끌어오려고 노력했습니다. 시를 쓰고 있으나 영화인 듯 보이게 하고 싶었어요. 'A'라는 장면과 'B'라는 장면이 겹쳐질 때 순간적으로 A도 B도 아닌 미묘한 장면이 생깁니다. 몇 개의 장면이 겹쳐지면서 결국 제가 쓰지 않은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떠오를 것 같았습니다."

    김 시인은 출판사 창비에서 운영하는 시 애플리케이션 '시요일'을 통해 매달 독자 사연에 맞춰 시를 추천하고 처방전을 썼다. 지난해 12월 약 200명의 독자들이 사연을 보내오는 등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독자들 사연을 읽으면서 슬프고 우울하지만 희망적이고 싶은, 굉장히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런 감정을 어루만져 주고, 마음을 풀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시의 역할인 것 같아요. 앞으로도 독자들과 소통하면서 저답게 살아가는 시인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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