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지혜'를 기다리며

  • 유희경 시인·시집전문서점 주인

    입력 : 2018.02.22 14:54

    [유희경의 日常詩話]

    '꽃의 지혜'를 기다리며
    겨울 막바지 추위에 서점 수도관이 터져버렸다.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스러운 건 둘째 치고 불편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이 역시 지나가리라. 며칠 지나니 다가올 봄에 대한 기대가 커진다. 곧 만날 작고 예쁜 것들을 상상하니 벌써 기분이 좋다. 무엇보다 꽃이 그립다. 수려한 목련, 철없는 개나리, 고운 진달래, 화려한 벚꽃. 그런 것들이 수놓을 따듯한 기운의 거리라니.

    다만 알고 있는 봄꽃의 이름은 이 정도뿐이다. '나는 서울내기니까' 변명하고 싶다. 서울은 특히 꽃 보기 쉽지 않은 도시니까. 그러나 모든 도시 사람이 나와 같지는 않을 터. 시인 장석남은 '입춘 부근'이라는 시에서 "꽃 밟을 일을 근심" 한다고 썼건만, 나는 꽃이 어디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주변을 살피지 못한 무심함을 혹독한 겨울을 겪고서야 반성한다. 아니, 살피는 것만으로는 부족할지 모르겠다. 김춘수는 그 유명한 시 '꽃'에서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에야 비로소 꽃이 되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벨기에의 셰익스피어' 마테를링크는 꽃 바라보기 챔피언이었다. 길에서 만난 식물을 향해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거기서 비롯되는 지혜를 관찰하고 감탄하며 기록했다. 유려한 문장으로 쓰인 수필집 '꽃의 지혜'(아르테)는 그 결과물이다. 이 책은 "100년 된 거대한 월계수"부터 깨꽃, 금작화와 난은 물론 "소위 잡초라 부르는" 이름 없는 풀에 이르기까지 살피고 또 살핀다. 시인의 눈에 비친 꽃은 놀라운 생명체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 정교한 계산으로 스스로를 단장하고, 곤충과 짐승을 유혹하는 자연의 생태를 어찌 단순한 진화의 결과물로만 볼 수 있겠는가. 시인은 그 경이로움에서 인간의 오만을 찾아낸다. 만물의 영장이라 불려온 인간은 사실 "생명이 걸어간 길을 그저 놀란 아이처럼" 뒤따르는 존재일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자연의 뜻과 더불어 공존해 나아가야" 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일"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마테를링크는 말한다.

    꽃을 바라보는 누구나 지혜까진 아닐지라도, 신비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지 않는가.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아름답다는 찬탄을 내뱉곤 하지 않는가. 그게 꽃이 주는 활력이지 않은가. 올봄엔 야생의 식물을 보다 가까이에서 볼 생각이다. 식물도감도 몇 권 마련했다. 그 색과 선의 세계로부터 지혜를 발견할 수 있는 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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