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 있어야 할 책

  • 유희경 시인·시집전문서점 주인

    입력 : 2018.03.01 15:32

    [유희경의 日常詩話]

    내가 운영하는 서점은 대학가에 있다. 덕분에 새 학기마다 들뜬 분위기가 되고 만다. 아직 청소년티를 벗지 못한 대학 신입생들을 볼 때면, 그 풋풋함에 공연히 기분 좋아진다. 평범한 직장인은 겪지 못할 행운이다. 기운이라는 게 있어서 그걸 주고받는다 하지 않는가. 새 기운으로 충만해질 때다.

    옆에 있어야 할 책
    한때, 입학 시즌 불티나게 팔리던 책 중 하나가 사전(辭典) 아니었을까. 두툼한 그것은 그저 들고 있기만 해도 똑똑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사전을 볼 수 없다. 사실 전자기기에 편입됐을 뿐이지만, 눈에 보이질 않으니 꼭 사라진 것만 같다. 그러고 보면 요즘 학생들은 새 사전이 주는 기쁨은 모르겠구나 싶다. 하얀 종잇장이 거뭇거뭇 때 묻어갈 때의 뿌듯함도 알 수 없을 것이다. 휴대성도 효율성도 떨어지는 물건이겠지만, 그런 것들이 지닌 정서는 소중한 것이라 사라지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사전의 쓰임은 단어를 찾는 것이겠지만, 사실 진짜 묘미는 발견하는 데 있다. 공부는 해야겠는데 따분하기만 할 때, 사전을 뒤적거리다 보면 뜻밖의 앎을 얻게 된다. 대개 그런 일은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단어에서 생긴다. 그래서 나는 시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친구들에게 사전을 뒤적여보라고 귀띔한다. 언어의 조탁에 가장 중요한 일이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실은 모르고 있던 의미를 되새겨 알게 되는 것이니까.

    올 초에 참 반가운 책 한 권을 만났다. 김소연 시인이 쓴 '한 글자 사전'(마음산책)은 사전의 형식을 빌려, 한 글자 단어들의 뜻을 시인 자신만의 정의로 풀어낸 에세이다. 책은 뜻밖의 발견으로 가득하다. 방금 펼친 페이지에는 '벽'에 대한 정의가 적혀 있다. "쌓을 때보다 넘어뜨릴 때 더 희열이 있다." 과연 그렇다. 쉽게 쌓지만, 무너뜨리긴 어려운 게 사람 사이의 벽 아닌가. 또 '뻥'에 대해서는 "참말을 더 참말처럼 보이려고 지나친 애를 쓰다가 사용하게 되는 과장된 참말"이라고 정의한다. 들킨 것 같아 웃음이 난다. 맞는다. 그렇지. '뻥을 칠 때' 꼭 그런 심정이다. 재밌어서 자꾸 찾아보게 된다. 그러다 문득, 한 단어에 멈춘다. 잘 알고 있었는데, 잊고 있던 단어다. "사람 있어야 할 가장 좋은 자리. 사회적으로 높거나 낮거나의 문제가 아니라, 인맥상에서 멀거나 가깝거나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누군가에게." '옆'이다. 내 옆을 생각해본다. 참으로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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