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몸으로 바위를 오른다… 두려움이 내 소설의 원천

    입력 : 2018.03.01 15:36

    [World Wide Writer] 유럽 대표 범죄 스릴러 작가 요 네스뵈

    팬덤
    팬텀

    요 네스뵈 지음|문희경 옮김

    비채 | 576쪽|1만5000원


    두려움이 인간을 움직이게 한다. 두려움은 본능적 상상력이다. 고로 두려움은 소설이 된다. 두려움 앞의 인간을 적어 옮기는 남자가 바로 요 네스뵈(58)다. 유럽을 대표하는 이 범죄 스릴러 작가는 조국 노르웨이를 주 배경으로 겨울의 냉기와 범죄와 불신과 잔혹을 그려낸다. 악인에 가까운 냉혈한 형사 해리 홀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베스트셀러 '해리 홀레 시리즈'는 지금껏 11권이 나왔고, 영화로도 제작됐으며, 전 세계 4000만 부가 팔려나갔다. '스노우맨' '팬텀' '리디머' 등 출간마다 서점가가 들썩이는데, 국내에도 9권이 소개됐다. 줄곧 칼이나 주삿바늘 같은 스릴의 냉기를 소설로 구현해내면서도 "겨울이 너무 춥다"는 그를 지난달 태국 휴양섬 끄라비(Krabi)에서 만났다. 환갑을 앞둔 이 근육질의 남자는 상반신을 탈의하고 있었다.

    암벽 등반을 하러 왔다고?

    "2001년 친구들 소개로 처음 이곳에 왔다. 그 후로 매년 이맘때 여기서 글 쓰고 암벽을 오른다. 암벽 등반은 말 그대로 밧줄 하나에 의지해 맨손으로 벽을 오르는 것이다. 오르는 것 말고는 그 무엇도 생각할 수가 없다. 고소 공포는 머리와 몸의 대화다. 덜덜 떠는 몸을 머리가 설득한다. 괜찮다고. 어쩌면 글쓰기와도 비슷하다.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계속 몸을 설득하면서 써야 한다."

    공포를 즐기나?

    "두려움에 관심이 있다. 어릴 적부터 겁이 많은 편이었다. 잠들 때 불 끄는 게 싫었다. 내 작품 속 등장인물은 모두 내면의 어둠과 싸운다. 귀신이나 악마가 아니라, 본능적인 두려움에 굴복하느냐 마느냐의 싸움이다. 겁나면 도망치는 사람이 있지만 나는 아니다. 그걸 타고 오른다."

    그는 1997년까지만 해도 오슬로 DNB 은행의 잘나가는 증권 중개인이었다. 그러다 돌연 호주로 떠났고, 소설을 썼으며, 해리 홀레가 호주의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첫 소설 '박쥐'가 대박을 터뜨렸다. 작가의 길이 열렸다.

    왜 떠난 건가?

    "1989년부터 밴드 '디 데레'(Di derre)에서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평일 낮에는 직장, 밤이나 주말엔 공연을 했다. 재미로 시작한 공연이 인기를 끌면서 1년에 공연을 180회나 했다. 완전히 지쳐버렸다. 돈은 많이 벌어놨었다. 다른 증권회사에서 나를 데려가는 조건으로 20만 유로(약 2억6000만원)를 제안했을 정도니까. 회사에 '장기 휴가를 내고 싶다'고 말했다. 5주를 얻었다. 어디로든 멀리 떠나고 싶었다. 출판사 친구가 '기왕 시간 난 김에 글이라도 써보는 게 어떠냐'고 했다."

    '박쥐'를 필두로 한 시리즈의 주인공은 정의감에 불타는 쾌남도, 영웅도 아니다. 인간을 신뢰하지 않는 "결코 주류에 속할 수 없는 문제투성이"다. '스노우맨'에서 술에 찌든 초췌한 중년이었고, '레오파드'에서는 세상과 담쌓고 홍콩 뒷골목을 서성이던 해리는 지난해 12월 국내 출간된 '팬텀'에 이르러 사랑하는 여자의 아들, 그에게만 속마음을 털어놓던 소년의 살해 혐의를 벗기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이달 출간되는 '리디머'는 북유럽의 12월을 배경으로 구세군 장교 살인 사건을 추적한다.

    태국 끄라비에 있는 암벽을 오르던 소설가 요 네스뵈가 밧줄에 매달려 웃고 있다. 환갑 직전의 나이가 믿겨지지 않는 탄탄한 근육을 과시하며 “2014년 처음 한국에 갔을 때도 암벽등반 장소를 수소문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정상혁 기자
    태국 끄라비에 있는 암벽을 오르던 소설가 요 네스뵈가 밧줄에 매달려 웃고 있다. 환갑 직전의 나이가 믿겨지지 않는 탄탄한 근육을 과시하며 “2014년 처음 한국에 갔을 때도 암벽등반 장소를 수소문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정상혁 기자
    왜 범죄소설인가?

    "범죄소설은 순문학과 달리 기승전결의 구조가 명확한 장르다. 인생을 논하는 거창한 주제를 쓰면 끝을 내기가 힘들다. 내 경우, 5주 안에 결말을 낼 수 있는 단순한 이야기를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범죄소설을 썼다. 우선 내가 소설을 쓸 수 있는 인간인지 알고 싶었고, 그 후 제대로 책을 내려던 계획이었는데 덜컥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편집자가 '집필 기간이 얼마냐'고 묻기에 '5주'라고 답하면 진지해 보이지 않을 것 같아 '1년 반'이라고 했다." 지금도 그는 12번째 해리 홀레 시리즈를 집필하고 있다.

    더운 곳에서 겨울 스릴러가 써지나?

    "상상력을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공항 로비, 동네 카페 등 어디서든 쓸 수 있는 게 글이다. 자리를 찾으면 헤드폰 끼고 글을 쓴다. 지금 여기서는 내 방갈로가 작업실이다. 에어컨을 세게 틀면 겨울이나 마찬가지다. 작가 지망생들이 늘 묻는다. 글 쓰려면 뭘 해야 하냐고. 그냥 앉아서 써라. 아침 8시에 출근하면, 한 시간 일찍 일어나 써라. 글은 운동 같은 것이다. 안 좋은 글이라도 계속 쓰면 좋아진다."

    운동가로서의 이 소설가는 어릴 적 영국 명문 구단 토트넘 입단을 꿈꾸던 촉망받는 축구선수였다. "열아홉 살 때 양쪽 무릎 인대 부상을 입어 축구를 포기하면서 공부를 시작했다"면서 "그때부터 정신 차리고 진지하게 인생을 고민한 셈"이라고 했다. 그는 20대에 고깃배 선원으로 일했고, 택시 운전도 했으며, 1년간의 의무복무도 해결할 겸 공군 사관학교에 들어가 공부했다. 금융계·공연계 등 여러 직종을 거치며 사람을 만났고, 관찰했다. 그것이 그의 세계관을 형성했다.

    집필을 위해 주로 뭘 하나?

    "교도소 수감자를 만난다. 은행 강도와 마약 중독자를 만난다. 경찰 친구를 만난다. 거리의 온갖 밑바닥 인생을 꿰고 있는 사제(司祭) 한 명과 돌아다니며 인간 군상을 만난다. 2차 세계대전을 다룬 '레드브레스트'를 쓸 때 참전 군인을 인터뷰했다. 총알 빗발치는 참호 속에서 헬멧을 벗게 하는 게 뭔지 아는가? 바람이다. 바람이 자꾸 헬멧에 부딪쳐 신경에 거슬리는 소음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그 소리가 사람을 미치게 해서 총알이 쏟아지는데도 헬멧을 벗게 한다는 이야기. 이런 디테일은 결코 인터넷 검색으로는 찾을 수 없다."

    책은 어떤가?

    "어머니가 도서관 사서였고, 아버지도 다독가였다. 어려서부터 책은 많이 봤다. 노르웨이 소설가 크누트 함순(1859~1952)에게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굶주림' '목신 판' '미스터리'를 좋아한다. 요즘엔 마키아벨리 '군주론'을 읽는다. 모두 인간 본성의 이해를 돕는 책이다. 헤밍웨이·찰스 부코스키·잭 케루악·헨리크 입센…. 입센이 희곡을 구성하는 방식은 범죄소설과도 비슷하다."

    범죄소설의 미덕이 뭘까?

    "최근 순문학은 개인을 파고들지만, 범죄소설은 사회를 건드린다. 범죄를 다루기에 사회 구조와 부조리를 끄집어낼 수밖에 없다. 소설은 주로 내가 사는 오슬로가 배경이다. 평화로운 동네처럼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헤로인 과다복용 사망률이 유럽에서 가장 높고, 폭력과 매춘, 갱단이 활개치는 곳이다. 그런 풍경을 들이밀면서 독자가 정치적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그 점에서 모든 범죄소설은 정치적이다."

    지금 책상에 올려둔 책은?

    "영국 소설가 존 르 카레 장편소설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다."

    추운 나라에서 온 이 스파이 같은 남자는 이제 본격적으로 톤사이(Tonsai) 해변의 암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크학!" 기합소리를 내며 근육을 비틀 때마다 온몸이 벌게졌다.

    도달하려는 꼭대기가 어딘가?

    "나는 야망이 크다. 나는 자료 수집가나 연구자가 아니라 소설가다. 소설가는 통찰을 담아 인간과 사회를 써야 한다. 진실한 글을 쓰고 싶다. 그래서 매일 아침에 일어나 끼적이고 있는 것이다. 노벨문학상이 목표가 아니다. 범죄소설가한테 노벨상을 주겠나?"

    스릴러 작가의 이중생활

    요 네스뵈는 노르웨이 인기 밴드 ‘디 데레’를 이끄는 현직 가수다. 보컬이면서 작사가다. “노랫말 짓기가 소설 쓰기와 근본적으로 같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가사마다 스토리가 있다. 팝송의 경우 곡당 3절로 이뤄지므로 3분 안에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 청자(혹은 독자)가 나머지 틈을 자신의 이야기로 채워넣을 수 있도록 해야 하므로, 그들의 상상력을 믿어야 한다. 작가는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전달할 뿐이다. 인물이 어떻고, 장소가 어디인지 알려주고 몇 마디 대화를 써넣으면 독자는 알아챈다. 이것이 어떻게 흘러갈지, 처음 몇 문장에 흥미를 느끼면 그들은 스스로 시나리오를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범죄 스릴러 작가의 음악은 어떤 스타일일까. “전혀 어둡지 않다. 오히려 10대 취향에 가깝다.”

    요 네스뵈

    1960년 노르웨이 오슬로 출생
    1989년 밴드 ‘디 데레’ 시작
    1997년 첫 소설 ‘박쥐’ 출간
    1997년 퇴사 후 전업작가 전향
    1997~2017년 ‘바퀴벌레’ ‘리디머’ ‘스노우맨’ ‘목마름’ 등 2년에 한 번꼴로 ‘해리 홀레’ 시리즈 출간
    2008년 ‘해리 홀레 재단’ 설립해 제3세계 빈민 아동 독서·창작 지원
    2013년 노르웨이 페르귄트상 수상
    2017년 영화 ‘스노우맨’ 국내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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